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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198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2019.3.21) 아파트 앞 초등학교 교문에 걸리는 현수막은 재미있다. 3월초에는 두 개가 걸렸다. "저 이제 학교 다녀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1학년 동생들아,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그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급생인 아이들, 선생님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이 학교는 그런 현수막을 꼭 담벼락에 걸어서 아이들 키에 맞춰준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본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상투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높다랗게 거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속으로는 축하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시키니까 마지못해 지난해 현수막을 꺼내어 그대로 달아놓은 건 아닌지, 변명하기도 어려울 객쩍은 의심까지 해보았다. 졸업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런 현수막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2019. 3. 21.
신명 날 리 없는 교사들 (2019.2.15) 겨울만 되면 교문 위에 달리는 현수막은, 보나마나 똑같은 "불조심 강조 기간"인 시절이 있었다. 그것까지 교장이 정할 이유도 없고 언필칭 창의성을 길러주는 곳이 학교니까 멀쩡한 아이들 두고 교장이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보하고, 지시·명령하고, 살펴보고, 관리·감독하는 곳이 상급관청이고 관내 행정기관이었다. 인용이 괜히 낯간지럽다.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겨울철을 대비하여 방화환경 조성을 통한 시민의 화재예방 및 안전문화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협조 요청하오니 안전하고 내실 있는 방화환경 조성 확산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공문이 일찌감치 온다. 거기에는 "당년 11.1~익년 3.31 / 불조심 강조의 달(혹은 '화재!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 ○○기관”을 3행으로 .. 2019. 2. 16.
비판 받을수록 강해지는 수능? (2019.1.10) 비판 받을수록 강해지는 수능? 한 여론조사업체와 인터뷰 중이었다. 향후 교육정책과 그 영향을 점쳐달라는 대목에서 꽉 막혔다. 우리 교육의 변화·발전 방향을 알아맞혀라?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횡성수설이 되려고 해 스스로 실망스러웠다. 교육과정기준이 바뀌면 교육이 변했는가? 20.. 2019. 1. 11.
박물관으로 간 교과서 (2018.12.13) '비만과 인간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서영이는 인터뷰 자료처리에 골몰하고 있다. 식단과 생활습관 분석으로 비만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활발하고 명랑하게 지내야 한다는 걸 주장하고 싶다. 선생님은 처음에 이 주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해결하기에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고, 기간을 두 달로 한 계획도 무리라면서 석 달 동안 진행하자고 했는데 그새 두 달이 지났다. 서영이는 컴퓨터로 자료처리를 하기 전에 계산 원리부터 알아내려고 일주일째 궁리하고 있다. 어제는 덧셈과 곱셈, 뺄셈과 나눗셈의 관계를 발견했다고 환호성을 올렸다. 보고서 내용에 따라 멋있는 랩과 누구라도 빠져들 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편집만 남았단다. 선우는 오전에는 정보도서실에서 지낸다. "코스모스"(칼 세이건)라는 책.. 2018. 12. 13.
원장님의 슬픔(2018.11.15) 원장님의 슬픔 어디서든 꼴사나운 짓을 하는 남성이 보이면 그 순간 전 제가 '수컷'인 게 남사스러웠습니다. 원장님은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 떠올리는 원장님이 제 기대대로 여성이라면, 그런 꼴을 보이는 눈앞의 여성이 어떻게 보였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주제넘은 것일까요? 자식에게 .. 2018. 11. 15.
학력이란 무엇인가 (2018.10.18) 지난여름 교육감 선거 중에는 학력에 관한 의미 있는 다툼이 벌어졌었다. 혁신학교를 운영하면 기초학력이 떨어진다는 논란에 따른 학력 논쟁이 선거공약으로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진보 후보 측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수학여행, 남북 학교 간 자매결연, 남북 학생 평화축제, 토론․실천 위주의 통일교육 등 남북 학생 교류를 특징적 공약으로 내놓은데 비해 보수 후보 측은 '공부하는 학교'를 만들어 진보․좌파 교육감들이 그동안 혁신학교를 지정 운영해서 망쳐놓은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학력 문제는 선거 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구체화되었다. 중간․기말고사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이 높으면 학력이 높고 그 성적이 낮으면 학력이 낮다고 보는 건 옳지 않으므로 학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2018. 10. 18.
너무나 공정한 나무타기 경기 (2018.9.20) 평가에 관한 유명한 카툰이 있다. 교육자로 보이는 늙은이가 쓸데없이 큰 책상 앞에 여유만만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절대복종과 암기, 주입식 교육밖에 모르는 김나지움의 권위적 교사가 군대 중위 같았다고 한 아인슈타인이 본다면 혐오하고도 남을 인물이다. 과연! 늙은이 앞에는 새, 원숭이, 펭귄, 코끼리, 물고기(수조 속), 바다표범, 개가 한 마리씩 일렬횡대로 정렬해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늙은이가 이렇게 말한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너희들은 같은 시험을 봐야만 한다. 모두들 저 나무에 올라가라." 선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공정한 경쟁이었는지, 불평한 수험생은 없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그림 아래에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란 제목의 간단한 해설이 보인다. "모든.. 2018. 9. 20.
힘들여 낳고 막 다루기 (2018.8.23) 힘들여 낳고 막 다루기 2018.8.16. 4세 아이가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갇혀 7시간이나 방치됐다가 숨진 이튿날에는 보육교사가 11개월짜리 아이를 몸으로 짓눌러 질식사시켰다. 지난달의 일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해 CCTV를 공개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런 대책이 .. 2018. 8. 23.
제비뽑기로 정한 부장교사 (2018.7.19)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은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위에 유리판을 올려놓아 어항 아가리를 막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오르다가 유리판에 부딪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모두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올라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젠 어항 위의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는 것이다. 어느 교장이 업무가 능숙한 10년차 이상 중견교사나 역량이 탁월한 교사에게 보직을 맡기면 좋겠는데 희망하는 교사가 적어서 기간제 혹은 신임교사에게 맡기거나 제비뽑기도 시켰다는 기사를 봤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 2018. 7. 20.
어떤 교재·교과서가 필요한가? (2018.6.21)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섞으면 보라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풋내기 교사는 녹말가루와 요오드 용액, 스포이트, 샬레만 준비하면 가능한 실험으로 즐거운 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실험인데도 마치 교사가 요술을 부려주는 것처럼 신기해하는 것도 좋지만 일 년 내내 실험실 근처에도 가지 않는 한 선배 교사가 "왜 혼자서 그따위 짓을 하느냐?"고 빈정댈 때마다 '이 아이들 중에서 과학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도록 하고야 말겠다!'는 남모르는 각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행복이란 본래 쉽사리 실현될 수는 없는 것인지, 간단한 그 실험을 모임별로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녹말은 거무튀튀해지기만 할 뿐 끝내 그 보라색을 보여주지 않아서 미리 참고서를 봐둔 한 성급한 아이.. 2018. 6. 20.
원장님! 보육 전문가이신 원장님! (2018.5.24) 배 4개를 70명 아이들에게 배식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깍두기 크기의 20조각을 열 명이 먹었다니, 요술이다 싶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그렇게 먹고 살아왔습니까? 주변의 아이들은 그렇게 먹고 성장했습니까? 그 열량이면 성장에 매우 적절한 것입니까? 조리사 선생님이 항의를 하면 그 선생님은 결국 교체되었다면서요? 그 아이들이 돈을 내지 않아서 그랬습니까? 감독기관에서는 그 아이들은 무시하고 소홀히 다루어도 늘 그냥 두었습니까? 한 푼씩 한 푼씩 아껴서 더 중요한 사업에 전용했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면 구청에 알리지 그랬습니까? 이건 정말 마지못한 질문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어서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여긴 건 아닙니까? '내 새끼'가 아니어서 홀대를 한 것 아닙니.. 2018. 5. 25.
대학 가기 좋은 시절(2018.4.16) 1970년대의 어느 봄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쑥스럽고도 감개무량했다. 가족들에게 학교에서 본 공문 내용을 전했다. "대학 가기도 좋아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자랑스러웠다. 아내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때도 대학진학은 지난하였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심해서 마침내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교육개혁운동 같은 것이 전개되었거나 대입제도 개선방향이 발표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그 '선언'은 허사(虛辭)였다. 내가 직접 관여한 양 호언장담한 '청사진'은 흐지부지 되어 12년 후 그 애가 겪은 대입전형 역시 유례없이 치열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지만 '마음껏' 공부하기는커녕 우선 가고.. 2018.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