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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온 생애의 수학여행 (2020.3.3)

by 답설재 2020. 3. 3.

 

 

 

 

 

 

 

온 생애의 수학여행

 

 

 

 

 

2009년 어느 가을 아침, 6학년 부장교사가 교장실로 뛰어들었다.

 

신종 플루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됐습니다!” “저런!” “어떻게 하죠?” “아이들 실망이 크겠죠?” “그럼요!” “대책을 세웁시다!” “어떻게요?” “가라면 가고 말라면 말고, 그러면 누가 교육을 어렵다고 하겠어요?”

 

그날 교사들은 예전에 모스크바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동유럽 나라를 가상 탐사하는 여정을 정해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 문화, 언어, 일상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작성했더라는 학급여행이야기를 읽고(유네스코 핸드북, 1981), 3일간의 경주 가상여행을 구상했다. 카페를 개설해서 자료를 모으고 토론회, 가장행렬,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여행이 취소됐다는 발표에 실망하면서도 이 대안에는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주었고 더구나 적극적이었다.

 

첫째 날, 우선 경주에서 파는 달콤한 빵을 맛보며 체험 코스를 따라 안내도와 안내 자료를 살펴보았고 사전에 개설해놓은 인터넷 카페(‘경주를 담다’)에서 경주 S초등학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궁금한 사항에 관한 자료를 구했다. 또 신라 역사연표도 만들었다.

 

이튿날은 가장행렬의 날이었다. 학급별·소집단별로 금관, 이름난 왕과 장군, 화랑 등의 복장을 만들어 발표회를 개최했다. 장엄했던 그 행렬의 모습은 졸업 기념 앨범에 남아 있다.

 

마지막 날에는 인터넷 카페의 경주토론방에서 경주를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발전시키는 방안, 문화재 보존 대책 등 여러 주제에 관한 토론을 전개하고 개인별 보고서도 작성했다. 8개 학급 전체 아이들이 다 함께 경주와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골든벨(에밀레종)을 울려라에 참여했다.

 

간단한 것 같아도 연구와 경험이 필요한 일정이었다. 교사들은 경주에서 생산되는 빵을 구입해 놓았고, 실제로 수학여행을 갈 때처럼 경주 체험학습자료’(36)를 만들어 아이들을 도와주었다. 또 경주시청과 교육청, 교환학습을 약속해준 학교에 연락해서 필요한 도움을 요청했고 풍부한 자료를 확보했다.

 

아이들은 허둥대지 않았다. 그런 활동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활동을 할지 기대가 돼요!” 하굣길에 만난 아이들의 대화가 고맙고 눈물겨웠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수학여행도 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가졌을까? 그럴 리 없다! 누구나 한두 번쯤 경주를 탐사(探査)’하며 그 일정을 떠올렸을 것이고, 어디를 가든 그 탐사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고, 그 경험으로 마침내 온 생애를 수학여행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 온 나라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다. 당연히 학교도 심각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 ··고 수업일수 감축 허용이 이야기되더니 최고 단계 경보(‘심각’)에 따라 개학도 연기되었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거점이어서 감염증 예방과 확산 방지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대책에 부심할 것은 당연하다. 수업결손 최소화, 교육과정 성취기준 핵심내용 누락 방지, 온라인 학습과 가정학습 자료제공 등 누구나 쉽게 상정할 수 있는 과제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교사들에게 방안을 강구해서 계획을 수립하라고 했을 것이다.

 

교사들이 현실적·실천적 방안 강구에 힘쓰는 한편, 계획수립에 치우쳐 정작 그 실천에는 소홀하지 않도록 격려해주면 좋겠다. 교사들은? 교장과 몇몇 업무 담당자만 바라보지 말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창의적·미래지향적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구안한다면 우리 교육이 실제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방안이 온라인을 통한 문제풀이쯤일 수는 없다. 그건 시스템만 갖추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지만 학생들이 좋아할 리 없는, 너무나 평범하고 안일한 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전개될 프로그램을 예상하며 가슴 뛰게 하는 학습은 교사들이라야 구안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