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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육과정 기준의 영향력

by 답설재 2019. 12. 9.

 

 

 

 

 

신출내기 교육부 직원으로 어느 도 연구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원장이 연구원 시설을 둘러보자고 했다. 원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따라나섰는데 조용한 곳에 이르러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40년간 혼신을 다해 온갖 시책의 구현으로 남다른 성과를 거두었지만 퇴임이 임박하자 그간 뭘 했는가 싶은 공허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네요."

숙연해서 뭐라고 대답하기가 난처한 그 회고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교단생활 마지막 해인 올해, 좋은 수업자료를 공급해서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과정 운영에 가까운 정책일수록 사업의 성과와 보람이 커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만은 다행이죠."

'교육연구기관의 대표가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말을 교육부 말단 직원에게 꺼내는구나' 그의 뒤를 따르며 생각한 것은 참으로 주제넘게도 겨우 그것이었는데 내내 잊히지 않는 그 원로의 말씀은 애송이에게 선물한 생생한 교훈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교육연구소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우리나라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기를 기대하느냐?"는 물음에는 이구동성으로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하라는 것이었단다. 말하자면 '국가 교육과정' 첫머리에 제시되는 '추구하는 인간상'에 합치되는 기대였을 것이다. 토론의 막바지에 이르러 대학입시문제가 나오자 이번에는 좋은 대학, 대학다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초중등교육의 최대·최종 목표라는 걸 강조하더라는 것이었다.

학부모들의 기대와 논리의 이중성을 조롱하기에 적절한 일화였겠지만 정말 그럴까? "국가 교육과정에서 설정해놓은 이상적인 인간상이 구현되면 당연히 좋은 대학,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초중등 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과 대학입시에서 기대하는 인간상은 서로 다른 것인가?" 그날 그 회의장에는 오히려 교육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반문을 하고 싶은 학부모가 많았을 텐데 누가 누구를 조롱해야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일화들로써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교육과정 기준(즉 국가 교육과정)의 영향력' 문제다. 예전에는 초중등교육의 목적과 목표·내용·방법·평가·지원에 관한 계획으로서의 '교육과정 기준'을 두고도 별도로 교육부, 교육청, 교육지원청, 단위학교로 내려가며 서로 다른 시책, 상호 연관성조차 없는 시책들을 줄줄이 제시했다. 그래서 교원들은 우왕좌왕하거나 그 잡다한 시책구현을 위해 연간 숨 쉴 겨를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옛날 얘기를 뭐하려고 하나. 지금도 엉뚱한 이는 많다. 가령 교과서를 연구·집필하면서도 대입제도가 바뀌면 교육과정도 바뀌어야 한다고 여기는 학자가 한둘이 아니고, 실용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해서 교과서를 수업자료의 한 가지로 다룰 수 있는 교사도 있지만 교과서 지상주의인 교사는 훨씬 많다.

교육 시책이나 정책의 영향력이 지나치면 교육과정 기준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단지 교과서를 만드는 근거가 될 뿐이고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각종 시험문제 출제의 직접적 기준이 되는 교과서가 금과옥조, 경전(經典)으로 군림하게 된다. 학생들의 사고는 교과서에 얽매이게 된다.

교육과정 기준이 제 구실을 못한다면 당연히 교육과정 관리(管理)의 힘이 지나치게 왜소해지고 교육과정의 이념구현을 지원해야 마땅한 이외의 정책과 시책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서 아무리 애를 써서 제도를 바꾸어도 교육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세월만 계속되기 마련이다.

대학입학전형제도가 바뀐다고 한다. 이번에 바꿔도 2025년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 대입전형은 또 바뀔 수 있다. 일련의 변화에서 교육과정 기준의 이념구현에 대한 고려와 고민을 깊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