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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뭘 보고 교사·학교를 믿나?(2020.2.4)

by 답설재 2020. 2. 4.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이렇게 썼다. "학생들을 회초리로 때리는 건 옛날부터 내려온 영장류의 의식적인 성교형태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래도 선생님들이 체벌을 계속할지 의심스럽다."

 

그렇거나 말거나 교육부에서는 최소한의 체벌을 허용하면서 관련 규정 정교화에 힘쓴 시절이 있었다. 체벌은 결코 교육수단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강력해지자 결국 일체 금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의 매'를 강조하는 사람도 많았고, '대체벌(운동벌, 학습벌 등)'이라는 생경한 대안도 나왔고, "학습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교육권도 보장하라!" "학교와 교실이 무너진다!"는 아우성과 호소도 있었다.

 

요즘은 간혹 교사가 학생에게 맞았다는 소리는 들려도 교사가 학생을 때렸다는 얘기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또 학생 간 폭력을 법(규정)으로 해결하게 되면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학부모가 늘고 심지어 변호사를 들이대기도 한다.

 

교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이 사라진 것도 큰 변화일 것이다. 예전에는 일단 불러 세워 놓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선생님, 제가 잘못 했습니다" 하고 고백해버리는 학생이 많았다. 게다가 자녀 문제로 교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학부모도 적지 않았다.

 

학부모들이 학교교육(교사)을 믿지 않고 거의 전부 사교육을 시킨다는 기사를 보고 옛일들을 떠올려봤다. 교육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때로 눈물을 보이고 학부모들도 그걸 인정하고 수용했던 것은, 그러니까 그럴 때의 그 자연스러운 눈물은,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믿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랬던 것이 이젠 초··고등학교 교육을 11.5%만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34.2%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고 학부모의 98%가 사교육을 시킨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한국교육개발원, 2019).

 

교육이 신뢰 없이 가능한 일인가! 또 도대체 뭘 못 믿는다는 것인가? 학교와 교사들이 무엇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걸까? 학부모들의 답은 분명하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생활지도 능력이고, 중학교 교사들은 학습지도 능력, 고등학교 교사들은 진로·진학지도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럼, 그것들은 쉬운 일인가? 그중 한 가지라도 당장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는가? ", 알았어요! 그게 불만이란 거죠, 지금?" 전화 한 통이면 A/S 기사가 달려와 산뜻하게 해결해버리듯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다면 그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학교에서 하는 일로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을까? 없다면 얼른 그 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활지도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여기 다른 학교는 사뭇 조용한데 일 년 내내 '학교폭력'이 터져 시달리는 학교가 있다. 이게 교육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건'을 처리하는 요령(매뉴얼) 혹은 제도(가해학생 조치 기준) 운용이 미흡한 걸까?

 

교사를 때리면 전학·퇴학을 시켜버리고 맞은 교사는 상담·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그간 학생들이 치료비 걱정이 없어서 교사를 때렸는가? 이제부턴 치료비 때문에라도 교사에 대한 폭행을 자제하고 교사를 존중·존경하겠는가?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연령대가 자꾸 낮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에선 형사처벌 적용 연령을 중학교 1학년으로 내릴 계획이란다. 그렇게 해도 안 되면 그 연령을 또 낮출 수도 있단 말인가?

 

교사들은 혹 비관적이거나 좌절한 상태일지 모르지만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AI)으로 진화하는 에듀테크가 사교육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현상을 놀라워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바로 '맞춤형(개별화)' 교육이 배경이다. 생활지도나 학습지도나 그 무엇이나 학교도 개별화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한다. 대면교육에서는 AI 같은 건 교사에게 도전 상대가 될 수 없다. 교사가 영원히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