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222

‘어떻게’를 잃고 ‘무엇’에 빠져버린 교육 여기 대학 진학을 절체절명의 목표로 하는 한 고등학생이 있다. 놀기 좋아하지만 영리한 학생을 떠올려도 좋고 기억력은 그저 그래도 성실의 표본인 경우도 좋고 붙잡고 앉아 일일이 설명해주고 닦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여도 좋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어 하고 실패하면 실의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만 전제하면 된다. 이 학생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① 지금부터 학교 공부에 열중한다, ② 조밀한 학습계획을 세워 자기 주도적으로 실천한다, ③ 경험 많은 가정교사를 채용한다, ④ 학원에 더 ‘투자’하고 수면 시간을 줄인다, ⑤ 학교공부, 학원 다니기, EBS 청취 등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 등등 예시가 신통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 교.. 2023. 12. 29.
교사가 전문직인가? (202.11.24) 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의사가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상태가 좋다고 하면 벌떡 일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의사에게 감사할 일인가, 관리를 잘한 건 본인 아닌가, (혹은) 다른 의료진이 검사했는데 인사는 의사가 받는구나, 공연한 심술이 나고 의사는 좋겠다, 부러워하면서 교사 시절에 그런 인사를 받아봤는지 되돌아보곤 한다. 의사만도 아니다. 겨울철로 접어들었는데 수도 배관에 무슨 탈이 났는지 내내 잘 나오던 따뜻한 물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듯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헛일이면 내가 평소 이 간단한 것에도 관심이 없었구나 싶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일상생활이 그처럼 순조롭게 흘러온 데 대한 무관심이 벌을 받은 것처럼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 2023. 11. 24.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2023.10.27) 로버트 풀검의 이 책은 꽤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유명하다. 유치원을 다녔건 다니지 않았건 석·박사 학위를 가졌건 그렇지 않건 제목을 보는 순간 괜히 멀리 돌며 헤맨 것 같은 때늦은 깨달음, 그 깨달음의 경이로움 같은 것이 새삼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라는 단 한 마디는 거의 누구에게나 충분할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나는 뜻있게 사는데 필요한 것은 거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내 신조는 이렇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2023. 10. 27.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2023.9.22) 우리나라가 망했다고? 완전히? 왜? 기사 제목 아래 한 여성이 보인다. 두 손을 머리에 얹고 놀란 표정으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조앤 윌리엄스/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 화면 아래쪽에 이름, 직위와 함께 자극적인 그 탄식이 소개되어 있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우리나라가 완전히 망했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 과장 아닌가?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예고편에 나왔다는 그 사진은, 우리나라의 너무나 저조한 출산율에 관한 설명을 듣고 놀란 반응을 보인 것으로 그 내용을 전한 모든 기사에 똑같이 다 실렸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얼마나 낮기에? 2022년 합계출산율 0.78은 세계 최저 수치일 뿐만 아니라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도 꼴찌다. OECD 평균 출산율(1.59명.. 2023. 9. 22.
다시 교장선생님께 (2023.9.1) 아무리 고귀한 지위에 있다 해도 교육자라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행정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반추해 보고 싶어 옛일을 떠올립니다. 교육자가 교육행정가보다 한 수 위라는 시시한 얘기는 아닙니다. 교장들을 한군데 다 불러놓고 부하 관료들과 함께 기세 좋게 등장한 교육감은 가관이었습니다. 박○○ 선수, 김○○ 선수 같은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가 명품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인재는 장차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도 했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단지 그 이야기를 해놓고는 의기양양 다시 그 관료들을 거느리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강당은 썰렁하고 씁쓸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돌연 '명품학교'라는 단어가 혐오스러워져서 결코 그따위 학교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느 학생들을 행복하게.. 2023. 9. 1.
학교교육, 왜 황폐화되었나? (2023.7.28) 7월 초, CNN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문항’을 없애기로 한 우리 정부 조치와 한국교육의 현실을 보도했다. 적나라했다.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보며 사실인지, 왜곡·과장·허위가 없는지 분석해봤다. ‘한국이 출산율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8시간짜리 수능시험에서 킬러문항(killer questions)을 없애기로 했다’ ‘당국이 칼을 든 것은 과도한 사교육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시도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다. 아기가 걷기 시작할 때쯤이면 많은 부모가 이미 사립 엘리트 유치원을 찾기 시작한다’ ‘수능을 치르기까지 학부모와 수험생은 고되고 값비싼 여정을 겪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는 저녁에 곧바로 Hagwon(학원)에 가고,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공부한다’ ‘한국의 사교육 세.. 2023. 7. 28.
학교는 말이 없다 (2023.6.30)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맞춤형 학습을 제공합니다" "재능을 찾아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 가꿈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존중의 마음으로 타인과 어우러지는 균형 잡힌 인재로의 성장을 도모합니다" 어느 고등학교 신입생 모집 팸플릿 내용이다. 더 바랄 게 없다. 어떻게 이걸 실현하는지 보고 싶고, 이 나라는 지금 교육 천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대입전형, 수능시험이다. 수능 때문에 저 '공약'도 허사(虛辭)가 된다.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면 부정할 사람이 별로 없겠지? 사정은 곧 바뀐다. 초등 '의대 준비반' 소문은 그렇다 치고 중고등은 말할 것도 없다. 학교마다 그 어떤 이상적 활동을 구상해도 학생들은 오.. 2023. 7. 2.
다시 태어나면 교사가 되지 않겠다는 선생님을 생각함 (2023.5.26)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고 하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선생님! 그런 줄 알면서도 정작 "다시 태어나면 결코 교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는 기사를 읽으며 쓸쓸하고 허전했습니다. 다시 태어날 리 없다는 걸 염두에 두신 걸까요? 우스개 같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때 결정하기로 하고 이번 생에서는 속상하게 하는 아이들, 학부모들, 걸핏하면 섭섭하게 하는 행정가들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대답하신 건 아니었을까요? 교사 생활이 쉬울 리 없지요. 누군들 짐작하지 못할까요. 말하기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죠. 하필이면 행정가들은 잘 모릅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도 맡은 일이 따로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 2023. 5. 26.
우리에겐 저 학생들뿐이다 그 변호사는 취임 직전 임명이 취소되었다.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폭력 사건이 있었고 학교와 교육청 조치에 불복하여 법의 심판을 거듭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인터넷에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 검색해봤자 발단과 경과, 소명, 조치 상황 등을 다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관계자 그 누구도 행복하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들면 일단 교육적 책임 같은 건 따질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교육은 무한정의 책임을 져야 마땅한 것일까? 사건의 발단, 경과, 결과의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교육적일까? … 그러지 않아도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는 초중고 시절 극심한 고통을 겪어서 모든 일.. 2023. 4. 28.
한국의 교육학자들에게 바다에서 실제로 물범을 보는 건 쉽지 않겠지만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면 당장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다. 눈, 코, 입은 잘 갖추고 있는데 귀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두루뭉술하고 미끄덩한 느낌의 몸통에 목은 짧고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꼬리처럼 나 있어서 해안에서 그 몸통으로 뒤뚱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불편해서야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물에만 들어갔다 하면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비행선처럼 유유히 돌아다녀서 '저 녀석처럼 헤엄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과 함께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물범의 능력 평가를 한국의 교육학자들에게 맡기고 싶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공정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 2023. 3. 31.
선생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가요? (2023.2.24) 선생님! 새 학기가 다가왔네요. 새로운 기대로 각오를 다지기도 하겠지만 올해엔 또 어떤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걸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걱정하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필이면 이때 선생님들을 우울하게 할 뉴스들도 줄을 이었고요. ‘교직의 안정성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교사의 지위가 추락하고 있다’ ‘전례가 없던 유형의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다른 직종에 비해 임금과 복지 수준이 낮은 편이다’ ‘임용 인원수가 초중등을 막론하고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교육대학교의 경우 재학생수가 최근 10년간 1/5이나 줄었다’ ‘초중고 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조사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던 교사 선호도가 자꾸 낮아지고 있다’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의 장점이 사실상 사라지.. 2023. 2. 24.
별나라에서 온 대통령? (2023.1.27) 학생들의 과목별 노트는 공식적으론 사라진 것 같다. 지시에 따른 변화는 아닌 것 같고 교과서가 ‘활동형’으로 바뀌면서 생각이나 느낌, 조사, 토론 결과 등을 교과서에 바로 적게 해주었기 때문이지 싶다.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가 공장을 모델로 해서 운영되는 대중 교육에서는 표면상으론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수학을 중심으로 역사와 기타 과목들도 가르치긴 했지만, 그 배후에 숨겨진 ‘시간엄수와 복종,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 익숙해지는 것’ 등 세 가지 덕목(德目)이 산업사회의 기반으로서 훨씬 더 중요한 교과과정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대부분의 산업주의 국가에선 ‘지금(1980년)’도 여전히 그 덕목들이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탄했던 지난 세기의 교육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2023.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