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한국의 교육학자들에게

by 답설재 2023. 3. 31.

 

 

바다에서 실제로 물범을 보는 건 쉽지 않겠지만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면 당장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다. 눈, 코, 입은 잘 갖추고 있는데 귀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두루뭉술하고 미끄덩한 느낌의 몸통에 목은 짧고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꼬리처럼 나 있어서 해안에서 그 몸통으로 뒤뚱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불편해서야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물에만 들어갔다 하면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비행선처럼 유유히 돌아다녀서 '저 녀석처럼 헤엄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과 함께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물범의 능력 평가를 한국의 교육학자들에게 맡기고 싶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공정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고 평가에 대한 의구심, 비판 같은 걸 피하려고 전문성은 따지지도 않은 채 일반 국민 대상 무작위 의식조사를 해보자고 할 것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올 결과도 보나 마나다. 개와 원숭이, 돼지, 고양이, 물고기, 양, 염소, 곰, 물범 등 시험을 보게 된 각종 동물을 불러놓고 일제히 100m 달리기를 시키거나 저 앞에 서 있는 나무 위에 올라가 보라고 해서 누가 잘 달리고 잘 오르는지 보겠다고 하겠지? 이건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닌가!

 

운동이나 미술, 음악 같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에게 그 분야의 실기를 통해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부여한다면, 혹은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그 재능을 발휘하면 장차 얼마든지 영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왜 다른 수많은 분야는 그렇지 않은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 다른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은 굳이 5지 선다형 문제를 잘 풀어야만 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인지, 왜 다른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은 그 재능을 훨씬 나중에 보여야만 하는지, 왜 한국의 교육학자들은 그렇게 쉬운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꿀 먹은 아이처럼 입을 닫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이 그랬지 않은가! "모든 이가 다 천재다. 그렇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그 물고기는 끝까지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 교육학자들도 그 물리학자가 그 말을 했다는 건 잘 가르치고 있겠지. 그런데 왜 평가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을까?

 

대입 전형 문제로 시끄러울 때 (한두 번이 아니어서 잘 기억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수시 비율이 더욱더 높아지는데 마침 또 '정시냐 수시냐' 의견대립을 보이자 국무총리가 나서서 "98점과 99점은 엄연히 다르다!"라고 하자 딱 그 한마디에 정시 쪽으로 상황이 정리되는 걸 보았다.

 

말할 것도 없다. 98점과 99점이 어째서 같겠는가! 유치원 아이들도 안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로 교육적인가? 교육이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그동안은 어째서 수시입학의 정당성이 우세했는가? 정말로 교육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어느 대통령이 "수능성적을 5등급 정도로 나누자, 그중 1등급이라면 어느 대학을 가든 공부를 잘할 것 아니냐? 그런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게 좋은 대학 아니겠는가?"라고 주장하던 논리는 또 왜 설득력을 얻지 못했는가?

 

이 이야기는 한국의 교육학자들은 도무지 말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한 것이다. 강의실에선 모든 사실을 명석하게 해석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왜 실제 상황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지 그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최근 100억을 번다는 학원강사가 서울대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멋진 축사를 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정답이 있는 걸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찾는 데 익숙해서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앞으로 만날 세상은 정답이 없다!" "인정해라. 여러분은 성격도 정상적이지 않다. 서울대 올 만큼 공부하려면 여러분은 보통 독한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교육학자들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 정답을 남들보다 더 잘 찾고 독해지는 '훈련'은 차라리 교육적이지 않으므로 그런 평가는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주장할 차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