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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다시 태어나면 교사가 되지 않겠다는 선생님을 생각함 (2023.5.26)

by 답설재 2023. 5. 26.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고 하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선생님! 그런 줄 알면서도 정작 "다시 태어나면 결코 교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는 기사를 읽으며 쓸쓸하고 허전했습니다.

 

다시 태어날 리 없다는 걸 염두에 두신 걸까요? 우스개 같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때 결정하기로 하고 이번 생에서는 속상하게 하는 아이들, 학부모들, 걸핏하면 섭섭하게 하는 행정가들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대답하신 건 아니었을까요?

 

교사 생활이 쉬울 리 없지요. 누군들 짐작하지 못할까요. 말하기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죠. 하필이면 행정가들은 잘 모릅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도 맡은 일이 따로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렇지 않을걸요?

 

어떻게 되어가는 세상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바쁘게 살아야 할까요? 하다못해 지필고사가 줄어들면 좀 수월할 줄 알았는데 수행평가가 더 성가시고, 첨단기기들이 보급될 때마다 쉽고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더 바빠진 게 사실이거든요. 이제 AI(인공지능)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마치 수업을 둘이서 나누어 진행하게 될 것처럼 얘기하지만 결국 선생님께서 '골치 아픈(잘 부려먹으려고 할수록 골치 아플 수도 있을) 녀석' 하나 더 데리고 살게 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툼이 벌어져도 말리면 그만이고 좀 심하면 학부모들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화해시키고 더러 병원 데리고 가고 하면 고마워했는데 이젠 걸핏하면 변호사가 나온다는 소리가 들려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전엔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다는 기막힌 사연에 더하여 행정조치 당사자들이 판사로부터 핀잔을 들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신문기사에서는 선생님들께서 어려워하시는 일들로 문제행동·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 학부모 민원과 그런 학부모들과의 관계 유지, 교육과 무관하고 과중한 행정업무와 잡무 등을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선생님마다 사정이 다르고 생각하시는 것도 달라서 그렇게 간추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못마땅한 선생님도 계시겠지요.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저 아이들이 영악하기가 그 부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고, 제 자식만은 이 세상을 멋대로, 맘대로 살아가도 좋을 것처럼 나대는 부모들 보면 어른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선생님! 문득 그 꽃다운 청춘에 어떤 마음으로 교사가 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아이들이나 그런 부모들이 없을 줄 아신 건 아니었겠지요. 그 교단에서 청춘을 다 바쳐 백발이 되실 때까지 어떤 일인들 없을까요.

그렇지만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가슴속 깊은 곳에 새겨진 줄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어떤가요? 몇 명이 그런 경우일지 헤아릴 수나 있을까요? 그 아이들이 오래오래 선생님을 기억할 것으로 기대하시는 건 아니죠? 기억하면 또 뭘 하나요? 어쩌면 더 멋진 일이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들의 철없던 시절 철없는 일들을 잊지 못하시지만 그들은 애써 잊으며 "내가 언제?" 하게 되는 것, 그게 교육이라는 것, 교육은 찬사와 보상으로는 더없이 덧없는 일이라는 것……

 

다시 태어나면 교사가 되지 않으시겠다면 그럼 저 아이들은 누가 가르치게 되나요? 선생님의 그 신념과 책무성, 그 교육관은 누구에게 전수하실 수 있을까요? 옛 시인이 우리의 저 아이들을 분명 풀잎, 햇병아리 혹은 아지랑이에 비유했을 시편이 떠오르는 오월입니다.

 

"나를 하염없이 눈물나게 하는, 풀잎 촉트는 것, 햇병아리 뜰에 노는 것, 아지랑이 하늘 오르는 그런 것들은 호리(毫釐)만치도 저승을 생각하랴. (중략) 그리하여 머언 먼 훗날엔 그러한 반짝이는 사실을 훨씬 넘어선 높은 하늘의, 땅기운 아득한 그런 데서 나와 이들의 기막힌 분신(分身)이, 또는 변모(變貌)가 용하게 함께 되어 이루어진, 구름으로 흐른다 하여도 좋을 일이 아닌가."(박재삼, '천지무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