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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교교육, 왜 황폐화되었나? (2023.7.28)

by 답설재 2023. 7. 28.

 

 

 

7월 초, CNN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문항’을 없애기로 한 우리 정부 조치와 한국교육의 현실을 보도했다. 적나라했다.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보며 사실인지, 왜곡·과장·허위가 없는지 분석해봤다.

 

‘한국이 출산율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8시간짜리 수능시험에서 킬러문항(killer questions)을 없애기로 했다’ ‘당국이 칼을 든 것은 과도한 사교육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시도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다. 아기가 걷기 시작할 때쯤이면 많은 부모가 이미 사립 엘리트 유치원을 찾기 시작한다’ ‘수능을 치르기까지 학부모와 수험생은 고되고 값비싼 여정을 겪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는 저녁에 곧바로 Hagwon(학원)에 가고,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공부한다’ ‘한국의 사교육 세태는 rat race(극한 생존경쟁)로 자녀를 18세(고3)까지 키우는 데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학계, 당국, 교사, 학부모가 일제히 교육 불평등과 청소년의 정신적 문제의 원인으로 꼽고 있으며, 심지어 출산율 급감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이를 고치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는 대체로 효과가 없었다’…

 

우리 언론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이후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신문에 ‘해외토픽’란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토픽이라면 ‘화제’ ‘관심’ 정도가 사전의 풀이지만 그때 그 기사들은 흔히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싶은 것들이었다. 이번 CNN 보도는 그들의 ‘해외토픽’ 쯤이었나?

 

우리 교육이 이 지경이 된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벌도 경력도 화려한 어느 젊은 정치인은 최근 한 젊은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태에 즈음하여 ‘교권회복’이라는 모호하게 인식될 수 있는 용어를 중심으로 전근대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면서 교원과 학부모간의 개인소통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임교사의 전화번호를 비공개로 결정한 최근의 행정조치를 안타까워하는 학부모가 많다. 그 조치는 꼭 이루어졌어야 했을까? 교사와 학생은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그 조치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교육 황폐화의 원인을 찾기보다 수없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거의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며 여기까지 온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모르겠다. 아무래도 지난 세기의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부디 저 아이 인간이 되게 해주십시오”(지금도 교육목표는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부탁하던 모습은 이제 우스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수능시험을 염두에 둔 학부모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든 말든 방해나 하지 말라”는 세상이 되었다. “당신이 뭔데?” 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나? 학생과 학부모의 요청은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대학에 입학하는 것인데,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지식주입’은 과연 학교만의 힘으로 가능한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한둘일까? 왜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Hagwon)으로 가야 할까? 왜 심지어 중학생들까지 EBS 방송을 청취하게 되었을까? 왜 수능시험 문제의 50%는 EBS 방송교재에서 출제되어야만 할까?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과연 어떤 능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교사에게 지식의 전수와 함께 조언, 자문, 안내, 해결, 중재, 격려 같은 덕목의 실현을 부탁할 수나 있을까?

 

CNN의 저 보도에 대해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⓵ 다른 나라의 일은 본래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이니 외면하면 그만이다. ⓶ 내 아이의 수능시험 외에는 관심 없다. ⓷ 우리나라 수능시험은 이미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고질병으로 고착되었다. ⓸ 수능은 지식을 중시하는 훌륭한 제도이며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는 중차대한 시험이다. ⓹ 수능은 ‘뜨거운 감자’다. 세월이 약이다. ⓺ 고쳐야 하지만 좋은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이나 하면서 우리는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묻고 싶다. 요즘의 행정조치들은 적극적이고 교육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