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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213

선생님의 전화번호(2019.6.6) 전국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교사 대부분(96%)이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있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18.6). 그중 64%는 근무시간 구분 없이 말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전화를 받아야 했고 그로 인한 교권침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은 교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예 "이게 내 전화번호요." 하진 않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학부모에게만 어쩔 수 없이 알려주는 것일까? 혹은 "절대로 알려줄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버티는 것일까? 사실은 이렇다. 거북하거나 난처하게 느껴지는 전화, 긴요하지도 않은 전화라면 근무시간에도 싫고 사적인 시간에도 싫다. 이러나저러나 달갑지 않다. 그런 전화가 문제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문방구점 자리의 커피숍에서.. 2019. 6. 6.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2019.5.30) 《밤이 선생이다》(황현산)라는 책 속 이 일화에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와 그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방문교사가 등장한다. "다음 그림에서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물음 아래 책을 읽는 사람, 모자를 쓴 사람, 낚시질을 하는 사람 그림이 나란히 제시되어 있다. 문제를 읽은 아이가 손가락으로 모자를 쓴 사람을 짚어주면 된다. "이 사람이에요!" 틀릴 리가 있을까? 결과를 확인하기 민망할 정도로 뻔하다. 문제를 읽을 수 있다면 그걸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문제를 출제하는 것일까? 묻고 답하기 훈련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일단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어떻게 모자 쓴 사람 이름을 알겠어요?" 이번엔 .. 2019. 5. 30.
초산업사회의 교장 왕국? (2019.4.19) "아직도 교장 왕국"이란 얘기는 듣기에도 민망하다. 후진적 사례에 대한 비난이어서 "많이 변했다"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할 만한 증거를 내놓기가 쉽지 않고, 학교 급별 경향까지 언급하면 더 곤혹스럽다. 학교에 자율화, 민주화 바람이 불던 2000년대 후반, 어느 교육장이 교장들을 모아놓고 취임사를 했다. "여러분이 나를 도와주는 길은 사고 없는 학교 관리자가 되는 것" "학교 곳곳의 취약지구에 관리자가 수시로 나타나 아이들이 아예 그곳을 찾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생활지도"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장관이나 교육감은 학교교육을 돕는 일을 한다면 교육장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저 교육장이 교장들로부터 굳이 도움을 받고 싶다면 그따위 생활지도 외에 또 어떤 도움을 좋아할까? 그 사고방식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 2019. 4. 20.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2019.3.21) 아파트 앞 초등학교 교문에 걸리는 현수막은 재미있다. 3월초에는 두 개가 걸렸다. "저 이제 학교 다녀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1학년 동생들아,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그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급생인 아이들, 선생님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이 학교는 그런 현수막을 꼭 담벼락에 걸어서 아이들 키에 맞춰준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본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상투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높다랗게 거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속으로는 축하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시키니까 마지못해 지난해 현수막을 꺼내어 그대로 달아놓은 건 아닌지, 변명하기도 어려울 객쩍은 의심까지 해보았다. 졸업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런 현수막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2019. 3. 21.
신명 날 리 없는 교사들 (2019.2.15) 겨울만 되면 교문 위에 달리는 현수막은, 보나마나 똑같은 "불조심 강조 기간"인 시절이 있었다. 그것까지 교장이 정할 이유도 없고 언필칭 창의성을 길러주는 곳이 학교니까 멀쩡한 아이들 두고 교장이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보하고, 지시·명령하고, 살펴보고, 관리·감독하는 곳이 상급관청이고 관내 행정기관이었다. 인용이 괜히 낯간지럽다.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겨울철을 대비하여 방화환경 조성을 통한 시민의 화재예방 및 안전문화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협조 요청하오니 안전하고 내실 있는 방화환경 조성 확산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공문이 일찌감치 온다. 거기에는 "당년 11.1~익년 3.31 / 불조심 강조의 달(혹은 '화재!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 ○○기관”을 3행으로 .. 2019. 2. 16.
비판 받을수록 강해지는 수능? (2019.1.10) 비판 받을수록 강해지는 수능? 한 여론조사업체와 인터뷰 중이었다. 향후 교육정책과 그 영향을 점쳐달라는 대목에서 꽉 막혔다. 우리 교육의 변화·발전 방향을 알아맞혀라?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횡성수설이 되려고 해 스스로 실망스러웠다. 교육과정기준이 바뀌면 교육이 변했는가? 20.. 2019. 1. 11.
박물관으로 간 교과서 (2018.12.13) '비만과 인간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서영이는 인터뷰 자료처리에 골몰하고 있다. 식단과 생활습관 분석으로 비만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활발하고 명랑하게 지내야 한다는 걸 주장하고 싶다. 선생님은 처음에 이 주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해결하기에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고, 기간을 두 달로 한 계획도 무리라면서 석 달 동안 진행하자고 했는데 그새 두 달이 지났다. 서영이는 컴퓨터로 자료처리를 하기 전에 계산 원리부터 알아내려고 일주일째 궁리하고 있다. 어제는 덧셈과 곱셈, 뺄셈과 나눗셈의 관계를 발견했다고 환호성을 올렸다. 보고서 내용에 따라 멋있는 랩과 누구라도 빠져들 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편집만 남았단다. 선우는 오전에는 정보도서실에서 지낸다. "코스모스"(칼 세이건)라는 책.. 2018. 12. 13.
원장님의 슬픔(2018.11.15) 원장님의 슬픔 어디서든 꼴사나운 짓을 하는 남성이 보이면 그 순간 전 제가 '수컷'인 게 남사스러웠습니다. 원장님은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 떠올리는 원장님이 제 기대대로 여성이라면, 그런 꼴을 보이는 눈앞의 여성이 어떻게 보였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주제넘은 것일까요? 자식에게 .. 2018. 11. 15.
학력이란 무엇인가 (2018.10.18) 지난여름 교육감 선거 중에는 학력에 관한 의미 있는 다툼이 벌어졌었다. 혁신학교를 운영하면 기초학력이 떨어진다는 논란에 따른 학력 논쟁이 선거공약으로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진보 후보 측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수학여행, 남북 학교 간 자매결연, 남북 학생 평화축제, 토론․실천 위주의 통일교육 등 남북 학생 교류를 특징적 공약으로 내놓은데 비해 보수 후보 측은 '공부하는 학교'를 만들어 진보․좌파 교육감들이 그동안 혁신학교를 지정 운영해서 망쳐놓은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학력 문제는 선거 후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구체화되었다. 중간․기말고사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이 높으면 학력이 높고 그 성적이 낮으면 학력이 낮다고 보는 건 옳지 않으므로 학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2018. 10. 18.
너무나 공정한 나무타기 경기 (2018.9.20) 평가에 관한 유명한 카툰이 있다. 교육자로 보이는 늙은이가 쓸데없이 큰 책상 앞에 여유만만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절대복종과 암기, 주입식 교육밖에 모르는 김나지움의 권위적 교사가 군대 중위 같았다고 한 아인슈타인이 본다면 혐오하고도 남을 인물이다. 과연! 늙은이 앞에는 새, 원숭이, 펭귄, 코끼리, 물고기(수조 속), 바다표범, 개가 한 마리씩 일렬횡대로 정렬해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늙은이가 이렇게 말한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너희들은 같은 시험을 봐야만 한다. 모두들 저 나무에 올라가라." 선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공정한 경쟁이었는지, 불평한 수험생은 없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그림 아래에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란 제목의 간단한 해설이 보인다. "모든.. 2018. 9. 20.
힘들여 낳고 막 다루기 (2018.8.23) 4세 아이가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갇혀 7시간이나 방치됐다가 숨진 이튿날에는 보육교사가 11개월짜리 아이를 몸으로 짓눌러 질식사시켰다. 지난달의 일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해 CCTV를 공개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런 대책이 소용없을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다." "완전히 해결할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아니 할 말로 현장의 관점이 여전하다면 학부모들은 위험지역에 무방비로 아이들을 내놓는 꼴이 된다. 그걸 보여주듯 그새 또 식사 시간에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집단지도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보살피고 가르치는 관점이 있다면 어느 한 아이도 전체와 똑같은 비중으로 소중하다는 관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 2018. 8. 23.
제비뽑기로 정한 부장교사 (2018.7.19)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은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위에 유리판을 올려놓아 어항 아가리를 막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오르다가 유리판에 부딪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모두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올라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젠 어항 위의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는 것이다. 어느 교장이 업무가 능숙한 10년차 이상 중견교사나 역량이 탁월한 교사에게 보직을 맡기면 좋겠는데 희망하는 교사가 적어서 기간제 혹은 신임교사에게 맡기거나 제비뽑기도 시켰다는 기사를 봤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 2018.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