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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초산업사회의 교장 왕국? (2019.4.19)

by 답설재 2019. 4. 20.




"아직도 교장 왕국"이란 얘기는 듣기에도 민망하다. 후진적 사례에 대한 비난이어서 "많이 변했다"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할 만한 증거를 내놓기가 쉽지 않고, 학교 급별 경향까지 언급하면 더 곤혹스럽다.

 

학교에 자율화, 민주화 바람이 불던 2000년대 후반, 어느 교육장이 교장들을 모아놓고 취임사를 했다. "여러분이 나를 도와주는 길은 사고 없는 학교 관리자가 되는 것" "학교 곳곳의 취약지구에 관리자가 수시로 나타나 아이들이 아예 그곳을 찾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생활지도"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장관이나 교육감은 학교교육을 돕는 일을 한다면 교육장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저 교육장이 교장들로부터 굳이 도움을 받고 싶다면 그따위 생활지도 외에 또 어떤 도움을 좋아할까? 그 사고방식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도 그렇지만 그를 교육장으로 임용한 교육감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는 더 컸다. 교장이 관리자라고? 뭘 관리하라는 거지? 가장 졸렬한 방법인 그 예고 없는 순시에는 어떤 전문성이 필요할까? 차라리 교장 같은 건 집어치우고 관리·감독에 능한 관리자를 따로 배치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저따위가 교육장이라니! 싶었지만 그 분위기도 볼만했다. 기대 이하의 장광설을 들으며 모두들 일전불사의 각오를 다지는 용사들처럼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렇지 않겠는가. 교육지원청이 상급기관이라면 그 순간 그들은 상관의 지엄한 지시·명령을 철저히 수행하려는 관리자로 변신하게 되고, 그런 관리자에게 수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수업 같은 건 교사들이나 하는 하급자의 일이고 나는 교직원과 학생, 시설·설비 같은 것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관리관'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장이 될 때까지 쌓아온 전문성은 다 잊고 관리자로서의 새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럼 교사들은 그때 이미 그들과 달랐는가? 그렇지도 않았다. 직원회의를 하면 저쪽 앞에 앉은 '관리자'의 대리인 같은 교무부장이 사회를 했고, '주번' 교사가 아이들의 생활목표를 교직원들에게 발표하는 엉뚱한 짓을 하고나면 너도나도 업무에 관한 공문서 내용을 요약 발표했다. 그들은 둘러앉지도 마주앉지도 않았다. 그건 권위가 사라지는 좌석배치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수업 얘기는 아예 하지 않았다. 매번 학교행사가 관심사였고, 하는 일마다 전통적이었다. 가령 운동회조차 어른들 행사처럼 '개회 선언' '대회장 인사'로 시작되었고, 대회장은 당연히 교장이었고, '달리기'는 키를 맞추어 하는 것이었고, '만세삼창'은 하필이면 학부모 대표가 맡았다. 행사 예산은 단 한 푼이라도 일일이 교장이 결정해서 집행했다. 교사들에게는 문제제기를 할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그게 학교였다.

 

교장들은 수업이론과 경험의 최고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즐길 줄 몰랐다. 그런 건 포기한 듯했고 그 대신 '관리자'로서의 권위를 누리기 일쑤였다. 무엇이 학교경영의 자율화인지, 어떤 것이 민주화인지 교사들은 관심을 나타낼 여지도 없어서 그게 관리자의 전유물이 되기 십상이었고, 심지어 '내가 관리하는 내 학교에서 자율화·민주화는 되레 비효율적이어서 필요 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났다. 더러 혹평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좋겠다. 학교는 무엇보다 수업이 우선하는 곳, 모든 일은 의논하여 결정하는 곳이고, 교장은 그 멋진 사회의 최고 전문가로서 언제나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빛나는 조언자, 빛나는 직위가 되고 있으면 좋겠다.

 

학교경영의 자율화는 권위주의를 경계할 때 아름다운 덕목이 된다. 그렇지 않은 자율화에는 이른바 '관리자'의 독단에 따른 폐쇄성이 스며들어 마침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수도 있다. 교사의 전문성은 경시되고 책무성만 부각되어 권력의 전횡이 이루어지게 된다. 학교는 자율화에 맞추어 권위주의부터 탈피해야 한다. 자율화와 권위주의의 개념이 혼재하는 상황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곳이다.

 

2007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의 한 기업에서 연공서열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한지 10여 년, 직급, 호칭 파괴 바람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며 학교경영에 대한 혹평을 떠올렸다. 수직적 문화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인데 학교는 창의적 아이디어만 필요한 곳은 아니라는 반박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더 중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