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비판 받을수록 강해지는 수능? (2019.1.10)

by 답설재 2019. 1. 11.











비판 받을수록 강해지는 수능?






  한 여론조사업체와 인터뷰 중이었다. 향후 교육정책과 그 영향을 점쳐달라는 대목에서 꽉 막혔다. 우리 교육의 변화·발전 방향을 알아맞혀라?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횡성수설이 되려고 해 스스로 실망스러웠다.


  교육과정기준이 바뀌면 교육이 변했는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핵심역량을 강조한다. 자기관리·지식정보처리·창의적사고·심미적감성·의사소통·공동체 역량 같은 것들이다. 지금 어떤 수업으로 이런 역량들을 길러주고 있나?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실험·실습, 토의·토론, 체험활동 같은 것들을 강조하며 단편적 지식을 주입하는 암기교육은 한물갔다고들 단언했지만 실제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핵심을 알려주고 암기시키고 확인하는 문제풀이 ‘훈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경향이 반복되니까 마치 주입식 암기교육을 고수하는 음흉한 세력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고교학점이수제가 적용되는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지면 초중등교육이 정말로 변할까?


  교육과정은 영향력이 미미하고, 주객전도로 오히려 대입제도의 영향을 받는데 비해 요란하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불길이 일면 그땐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까? 모든 건물, 시설·설비, 교재·교구에 인터넷이 내장되고, 무선인터넷이 일반화되고, 각종 지식정보 같은 건 백 번이라도 설명해주고 심지어 수학공식도 동화처럼 쉽고 재미있게 얘기해주는 로봇이 일상화되면 정말 달라질까?


  천막교실을 쓰던 우리 교육의 시설·설비는 세계적 수준으로, 이와 같은 하드웨어를 갖추게 된 건 기적이라고들 했다. 수업도 기적에 가깝도록 변했나? 수업은 교사의 몫이라면서 시설·설비 확충에만 열을 올리고 그 실적을 자랑한 건 아닐까?


  화제가 수능시험에 이르렀다. 이건 견해를 밝히기조차 어렵다. "현실적으로…" 혹은 "우리나라는…" 하면 이야기할 게 거의 없다. 어정쩡하게 두 가지로 대답했다. 다른 나라에선 우리의 수능시험을 기이한 얘깃거리로 다루기도 하지만 수능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학부모들로부터 공정한 시험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현장은 변할 수가 없고 '수능전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그러나 두고 보라! 어느 날 아침 수능시험이 다른 성격으로 바뀌면 실로 경천동지의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유보되었던 수업혁신 방안들이 물길을 찾은 듯 유입되고 일반화된다.


  제법 그럴 듯한 견해라는 느낌으로 열띤 설명을 해주었는데 앙케트 담당자는 그러지 말고 수능 유지 혹은 폐지 중 한쪽을 선택해보라고 했다. 이런! 그럼 상황을 꿰뚫은 진단을 인용하는 수밖에 없다.


  2017년 여름으로 예정되었던 수능혁신방안 발표가 지난여름에 이루어졌다. 게다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당초 수능시험제도를 마련한 학자가 나서서 "점수로 줄 세우는 '학력고사식 수능'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암기교육의 폐해를 없애려고 도입한 수능이므로 절대평가·자격고사로 바꾸고, 정부는 대입에서 손 떼고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육부장관을 지낸 어느 교수는 암기·이해는 AI에게 맡기고 교사는 창의성·인성 함양에 나서야 한다면서 "모든 학생이 같은 문제를 푸는 교육은 10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전에 교육부장관을 지낸 어느 대학 총장도 "수능시험 공부는 창의성을 죽이는 훈련"이라면서 "나라가 망해 가고 젊은이들이 죽어 가는데도 계속 '오지선다형' 수능으로 간다"고 주장했다.


  헬리오시티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한 것은 혁신학교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혁신교육을 왜 반대하겠는가! 단지 수능시험에 불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걸 알면서 왜 가만있을까? 이게 말이나 되는가. 입시드라마 'SKY 캐슬' 시청률이 약 16%로 종편 드라마 사상 최고기록을 보이고 있단다. 입시광풍의 우습고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들 한다. 한 '입시전문가'가 씩씩하게 밝혔다. "요즘은 스펙도 쌓아야 하고 내신도 좋아야 하고 수능준비도 잘해야 하기 때문에 SKY 캐슬식 입시코칭에 의원, 장관 아빠가 줄을 섰다." 그게 좋은 일이어서 의원, 장관들이 앞장섰는가?


  지금 책임 있는 누군가가 다시 새로운 대입전형 및 수능혁신 방안을 피나는 열정으로 연구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럴 것 같은 이유가 있다. 그냥 간다는 건 암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