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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198

온 생애의 수학여행 (2020.3.3) 온 생애의 수학여행 2009년 어느 가을 아침, 6학년 부장교사가 교장실로 뛰어들었다. “신종 플루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됐습니다!” “저런!” “어떻게 하죠?” “아이들 실망이 크겠죠?” “그럼요!” “대책을 세웁시다!” “어떻게요?” “가라면 가고 말라면 말고, 그러면 누가 교육을 어렵다고 하겠어요?” 그날 교사들은 예전에 모스크바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동유럽 나라를 ‘가상 탐사’하는 여정을 정해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 문화, 언어, 일상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작성했더라는 ‘학급여행’ 이야기를 읽고(유네스코 핸드북, 1981), 3일간의 ‘경주 가상여행’을 구상했다. 카페를 개설해서 자료를 모으고 토론회, 가장행렬,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2020. 3. 3.
뭘 보고 교사·학교를 믿나?(2020.2.4)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이렇게 썼다. "학생들을 회초리로 때리는 건 옛날부터 내려온 영장류의 의식적인 성교형태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래도 선생님들이 체벌을 계속할지 의심스럽다." 그렇거나 말거나 교육부에서는 최소한의 체벌을 허용하면서 관련 규정 정교화에 힘쓴 시절이 있었다. 체벌은 결코 교육수단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강력해지자 결국 일체 금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의 매'를 강조하는 사람도 많았고, '대체벌(운동벌, 학습벌 등)'이라는 생경한 대안도 나왔고, "학습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교육권도 보장하라!" "학교와 교실이 무너진다!"는 아우성과 호소도 있었다. 요즘은 간혹 교사가 학생에게 맞았다는 소리는 들려도 교사가 학생을 때렸다는 얘기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또 학생 간 폭력을.. 2020. 2. 4.
단축키와 인공지능 (2020.1.3) 2019.11.16. 거실 단축키와 인공지능 어떤 정책이 장기간 시행되면 흐지부지해지거나 변질·왜곡되기도 하지만 절실한 것이면 어떻게든 이루어지게 된다. 1980년대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연수도 적절한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그 연수는 199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거의 모든 연.. 2020. 1. 4.
교육과정 기준의 영향력 신출내기 교육부 직원으로 어느 도 연구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원장이 연구원 시설을 둘러보자고 했다. 원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따라나섰는데 조용한 곳에 이르러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40년간 혼신을 다해 온갖 시책의 구현으로 남다른 성과를 거두었지만 퇴임이 임박하자 그간 뭘 했는가 싶은 공허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네요." 숙연해서 뭐라고 대답하기가 난처한 그 회고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교단생활 마지막 해인 올해, 좋은 수업자료를 공급해서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과정 운영에 가까운 정책일수록 사업의 성과와 보람이 커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만은 다행이죠." '교육연구기관의 대표가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말을 교육부 말단 직원에게 꺼내는구나' 그의 뒤를 따르며.. 2019. 12. 9.
학교는 사라지는가? (2019.11.27) UN에서의 연설에서 "어린 시절 별을 보며 내가 세상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라고 상상했었는데, 10세 때쯤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을 염려하며 그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나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더라"고 회상한 RM "힘내라구요 말 대신 다 그렇단 거짓말 대신 그저 이 모든 바람.. 2019. 11. 30.
아인슈타인이 본 평가의 공정성(2019.10.3) 여기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쓸데없이 큰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 앞으로는 여러 동물들이 나란히 정렬해 있다. 맨 왼쪽엔 언제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새 한 마리가 단정히 앉아 있다. 그다음은 원숭이, 나무타기 명수인 그의 공인실력을 넘볼 동물은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펭귄은 쓸모도 없을 것 같은 날개를 달고 잘 걷지도 못하는 둔재 같지만 물속에서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극한기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늠름한 녀석이다. 코끼리의 재능은 어떤 것일까? 어느 유아에게 물어봐도 이 설명보다 훨씬 더 좋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여기에서도 수조 안에 들어 있지만 아무도 왜 밖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그들 중에 사람도 있었다면 수조에서 나와야 공정.. 2019. 10. 3.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2019.9.5)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12등급에서 3 또는 5등급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을 대폭 줄이자는 지도자가 있었다.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실력이 좋은 학생을 구분해낼 수가 없어서 선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진짜 실력(점수였겠지?)'이 드러나지 않아 운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황당한’ 입시제도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판하는 쪽은 공공연히 고함을 질렀다면 지도자의 관점을 지지하는 쪽은 '꼭 실현돼야 할 과제가 맞기는 한가?' 싶도록 조용했다. 지도자가 거센 폭풍처럼 몰아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몰라도 웬만하면 포기하고 말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고 현실적 방안 마련과 추진과정이 지난하지 싶어서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지도자의 주장은 힘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과는 보.. 2019. 9. 5.
가르쳐보면 알게 되는 것들(2019.8.8) 퇴직자들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교육 실천 사례를 즐겁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전에 했던 얘기를 보충하고 싶어서 또 얘기하고 이미 써먹은 버전이라는 걸 잊고 또 얘기한다. 그 선배에겐 불가사의한 일이겠지만 후배들은 그걸 민망해하고 싫어한다. 참고 견딘다. 들은 얘기를 또 들었고, 또 듣기로 예약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오죽하면 버트런드 러셀은 세상에서 제일 지겨운 사람들의 유형을 연구하고 있다며 변명을 일삼는 사람, 늘 근심에 싸인 사람, 입만 열면 스포츠 얘기인 사람, 현학적인 사람, 허풍을 떠는 사람, 근거 없이 활기찬 여성에 더하여 자신의 일화 소개로 일관하는 사람을 들었겠는가. 그는 우스개삼아 이 연구로 일곱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할까 싶다고 했는데, 가령 일화로 지겹게 하는 .. 2019. 8. 8.
이 아이에게 무엇을 주문해야 하나…(2019.7.5) "재미있게 지내고 점심 먹고 만나자" 미적미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오늘 아침에도 또 유치원 입구에서 헤어지며 그동안 해오던 대화를 되풀이하고 돌아섰다. 곧 여름방학이다. 2학기가 지나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점점 더 초조해진다.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재미있게 지내라"는 부탁만은 바꿔야 한다는 강박감까지 갖게 됐다. 언제까지나 재미있게 놀기만 하며 지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건 쉽기도 하고 지금도 유효한 전통적 부탁일지 모르지만 빛이 바랜, 수십 년 전 버전이어서 싫다. 이스라엘 식도 있긴 하다. 유대의 부모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보다는 으레 "오늘은 뭘 질문했니?" 묻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경우 실용적이진 않다. 아침부.. 2019. 7. 5.
선생님의 전화번호(2019.6.6) 전국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교사 대부분(96%)이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있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18.6). 그중 64%는 근무시간 구분 없이 말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전화를 받아야 했고 그로 인한 교권침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은 교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예 "이게 내 전화번호요." 하진 않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학부모에게만 어쩔 수 없이 알려주는 것일까? 혹은 "절대로 알려줄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버티는 것일까? 사실은 이렇다. 거북하거나 난처하게 느껴지는 전화, 긴요하지도 않은 전화라면 근무시간에도 싫고 사적인 시간에도 싫다. 이러나저러나 달갑지 않다. 그런 전화가 문제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문방구점 자리의 커피숍에서.. 2019. 6. 6.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2019.5.30) 《밤이 선생이다》(황현산)라는 책 속 이 일화에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와 그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방문교사가 등장한다. "다음 그림에서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물음 아래 책을 읽는 사람, 모자를 쓴 사람, 낚시질을 하는 사람 그림이 나란히 제시되어 있다. 문제를 읽은 아이가 손가락으로 모자를 쓴 사람을 짚어주면 된다. "이 사람이에요!" 틀릴 리가 있을까? 결과를 확인하기 민망할 정도로 뻔하다. 문제를 읽을 수 있다면 그걸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문제를 출제하는 것일까? 묻고 답하기 훈련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일단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어떻게 모자 쓴 사람 이름을 알겠어요?" 이번엔 .. 2019. 5. 30.
초산업사회의 교장 왕국? (2019.4.19) "아직도 교장 왕국"이란 얘기는 듣기에도 민망하다. 후진적 사례에 대한 비난이어서 "많이 변했다"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할 만한 증거를 내놓기가 쉽지 않고, 학교 급별 경향까지 언급하면 더 곤혹스럽다. 학교에 자율화, 민주화 바람이 불던 2000년대 후반, 어느 교육장이 교장들을 모아놓고 취임사를 했다. "여러분이 나를 도와주는 길은 사고 없는 학교 관리자가 되는 것" "학교 곳곳의 취약지구에 관리자가 수시로 나타나 아이들이 아예 그곳을 찾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생활지도"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장관이나 교육감은 학교교육을 돕는 일을 한다면 교육장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저 교육장이 교장들로부터 굳이 도움을 받고 싶다면 그따위 생활지도 외에 또 어떤 도움을 좋아할까? 그 사고방식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 2019.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