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아예 그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국회에서는 이를 학습자료로 규정하는 등 논란이 거듭되었다. 쟁점의 배경은 교과서는 정부 예산으로 보급하는 데 비해 학습자료는 희망하는 경우 학교 자체 예산으로 구입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올해는 초등 3·4학년과 중·고 1학년(영어·수학·정보)에서 희망하는 학교만 사용하고 있다.
지난 1월 런던에서는 대규모의 에듀테크 박람회가 열렸는데,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4개 출판사에서도 AI 디지털 교과서를 실연하여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몇 가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꼈다. 우선 국내에서는 왜 그런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인기를 끌어서 교과서의 지위를 고수해야 마땅하다는 건 아니다. 어떤 성격의 것이든 교사와 학생들에게 다가가 ‘수업혁명’을 일으켜보자는 열정과 확신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홍보물에는 ‘500만 명의 학생에게 500만 개의 교과서를(5 million textbooks For 5 million students)’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 아이디어’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 놀라운 아이디어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의 수준을 판단해 적합한 문제를 제시’한다? 그런 ‘맞춤형 학습’은 전에도 가능했던 일 아닌가?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빠른 피드백이 가능’하다? 그 기능을 왜 문제 풀이와 복습에 중점을 두어 설명했을까?
눈에 띈 것은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한 V 출판사 인터뷰였다. ‘디지털 교육은, 모든 학생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던 전통적 교육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지식전달 수업을 가정해 보자. 누구를 대상으로 설명해야 할까? 상위그룹? 중위 혹은 하위그룹? 어느 계층의 학생을 주 대상으로 하든 경시되는 학생이 있고 그들은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세월, 그 상황을 견뎌야 할 수밖에 없다. “1등급의 학생들을 가르치면 흥미는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네. 자네를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보통 학생들임을 잊지 말게” 에릭 홉스봄은 그렇게 부탁했지만 여러 학생이 참여하는 교실 수업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고민의 이유는 당연히 뒤처지는 학생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그렇다. 그래서 부시 정부의 부진 학생 일소 정책을 담은 교육법 NCLB(No Child Left Behind Act)는 세계 여러 나라가 공감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 G도 전 교육감 후보의 “한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공약이 환영받았고, 오래전 어느 교육단체에서 ‘장애 학생 하나하나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했을 때 박수를 보낸 사람이 많았다.
‘수업혁명’은 결국 개별학습과 취지가 같다. 만약 문제를 풀게 하고 인공지능이 그 상황을 파악해서 교사에게 알려주는 정도라면 초보적인 수준이다. 교사의 배려와 자문, 안내 활동은 필수적이고, 그런 지도는 모든 교과목에서 공통적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과목별로 자신의 학습에 따라 데이터를 축적해 가는 자신의 교과서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교사는 AI의 도움으로 학생들 각자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것이 수업혁명이어야 한다. 같은 교과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 모든 학생이 똑같은 수업을 받는 건 아무리 발전해도 혁명이 아니다. 뉴질랜드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 교사 애시톤-워너가 마오리족 아이들을 가르친 이야기가 그의 책 『교사』(1963)로써 널리 알려진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당신이 맡은 학생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이를 학습에 활용하게 하자”
후진국의 옛이야기가 아니다. 아직도 1960년대처럼 똑같은 교과서를 모든 학생이 일제히 교과서대로만 배우는 방식이 후진적이다. AI가 도입되었으므로, 그게 교과서든 학습자료든 모든 학생이 자신만의 교과서를 만들어가며 즐겁게, 의욕적으로 공부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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