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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생각과 느낌, 몸이 따로따로 있다

by 답설재 2025. 3. 31.

 

 

 

 

생각은 느리다. 내가 처한 시간과 공간을 따르지 못할 때도 있다.

앞으로 나가려고 하기보다는 뒤쪽을 바라보려고 한다.

생각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하고, 그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과 함께하려면 허덕허덕해야 할 것 같다.

드문드문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건 편리하고 고마운 일이다.

몸은 여기에 있다.

자다가 깨면 새삼스럽 '내가 여기 있구나' 한다.

얼핏 '거기인가?' 하다가 설풋 둘러보고 '여기구나' 하고는 또 잠이 든다.

생각이나 느낌은 엊그제나 잘해봤자 어제에 머무르기 일쑤인데, 몸은 늘 오늘 이 시각(시간)의 여기에 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느낌은 자주 생소하다.

느낌은 큰일날 일 없는 사소한 것이다. '그 참... 내가 이미 여기에 있네'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생각과 느낌, 몸은 자주 따로 있다.

이 어긋남 때문에, 나의 세상은 좁긴 해도 자주 신기하고 새롭다.

이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어긋남을 즐기고 있다.

구경거리, 생각할 거리, 받아들여야 할 느낌이 새삼스럽게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 나는 대개 지금이 20세기라고 생각하며 지낸다. 그래서 마음은 소년인데 몸이나 하는 짓은 노인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