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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사람은 변할 필요가 없으면 변할 필요가 없다

by 답설재 2025. 4. 8.

그리운 J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그리운 바다

 

 

 

교육부에서 일할 때 교과서 원고 집필·검토에 참여해 준 여교사 J는 퇴임해서 제주도로 내려갔다. 혼자 지낸다.

 

아름답고 마음씨 곱고 아는 것도 많은 선생님이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기도 했다. 어려운 일을 부탁하면 함께 일하는 다른 선생님 눈치 같은 건 살피지 않고 판단했고, 짜증을 내거나 우울해한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그런 대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과년한데) 왜 결혼하지 않았는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굳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했지 싶다.

 

한동안 안부를 모른 채 지내다가 최근에 부모님 곁을 떠나 그렇게 혼자 생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J는 며칠 뒤 문자 메시지로 자신의 블로그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다. 내게도 블로그가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 블로그를 찾아가 보았다.

글이 많지 않았고, 나처럼 길게 쓰지도 않고 사진이 많아서 읽기 쉬웠다. 두어 시간 살펴보면서 읽은 글에는 일일이 '공감'('좋아요') 표시(♡)를 해주었고, 댓글도 하나 달아놓고 왔다.

이렇게 쓴 부분에 대한 댓글이었다.

 

 

(...) 오전에는 배웅을 하느라 오후에 잠시 나들이를 하였다.

혼자 있다가 같이 있으면 사람이 와서 심난, 같이 있다가 혼자 있으면 사람이 가서 심난. 적응하는 과정은 언제나 심난하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고, 말은 쉽지만 언제나 인간관계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심난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묻는 댓글을 썼다. 일방적으로 묻는 건 예의가 아니고 대답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나의 경우는 어떻더라는 것을 쓰면서 '심난'이란 어떤 것인지 물은 것이었다.

 

J는 답글을 써주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싶었고 짚이는 것도 있어서 다시 찾아가 확인해 보고 '역시 그렇구나!' 했는데, J는 아예 아무에게도 답글 같은 걸 써주지 않고 있었다.

 

J는 J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닐뿐더러 그 누구도 관여할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걸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니 기가 막힌 일이다.

J는 명석한 선생님이다. 댓글란이 있으면 답글란도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자칫하면 물을 뻔했지만, 왜 답글을 써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라면 나는 J에게 얼마나 우습고 망신스러웠겠는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이 사람이 아직도 교육부 장학관 행세를 하며 살아가나?'

 

그런 스타일이어서 결혼을 하지 않은(못한) 것 같다는 진단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진단은 자유다. 그렇지만 그 진단은 J에게는 "왜 답글을 써주지 않느냐?"고 묻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살아온 것 같다.

나는 나의 경우를 보면서,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라도 변해야 하고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어려워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시 나의 경우를 보면서 최근에야 깨달았지만, J의 경우를 보면 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굳이 변해야 할 하등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의 이치는 깊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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