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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노인24

"파충류" 혹은 "틀딱충" 1 불치병을 앓는 젊은 여성이 '경로석(?)'에 앉아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가 다짜고짜 그 여성의 뒷덜미를 쳤답니다. 그 얘기는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보고 해주었습니다. 구체적인 얘기였는데 지금 내겐 경로석(혹은 장애인석, 임산부석, 영유아 동반자석……)에 앉은 여성과 그 여성의 뒷덜미를 쳐버린 노인의 이미지만 남아 있습니다. 2 강 하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부터 서서히 고개를 돌려 상류의 빅벤에 이르기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런던의 아름다운 관광명소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두통과 피로는 계속되겠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겉으로는 아무리 쇠약해 보일지라도 과거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젊은이들에게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우리 같은 .. 2018. 2. 11.
2016년 7월! 7월! 2016년 7월……. 또 한 해의 가을, 겨울이 오고 있다. 「4계」1열두 곡을 단숨에 듣는 것 같다. '휙!' '휙!' 지나가버린다. 심각한 일이지만 몸도 마음도 모른 체한다. 태연하다. 더는 매일 밤 〈뉴스아워〉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정치나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논쟁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초연이다. 나는 중동 문제, 지구온난화, 증대하는 불평등에 여전히 관심이 깊지만, 이런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다. 이런 것은 미래에 속한 일이다. 올리버 색스는 죽음 가까이 가서 이렇게 썼다.2 앨빈 토플러도 저승으로 갔다.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 .. 2016. 6. 30.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어사연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궁리 2009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서문이 꼭 다시 한 번 읽겠다고 생각한 책 『만남, 죽음과의 만남』을 쓴 정진홍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습니다. 그쯤 나이가 들면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것도 까만 옛일이 되고, 내 생각이나 결정만이 옳다고 여겨 고집 부리던 일도 우스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부럽고, 아쉽고, 그래서 시샘도 하고, 다툼도 하고, 체념도 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하기도 했던 일도 '그것 참!' 하는 한마디 혼잣말로 다 치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2016. 2. 11.
「공인 어르신」 공인 어르신 박두순 이제 나는 어르신이 되었다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 카드'를 받고 국가 공인 어르신이 된 거다. 서울시와 국가가 공인한 어르신이니, 처신에 주의해야겠다며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마구 웃는다 늙었다는 것인데, 뭐 그리 좋으냐는 웃음이다 친구들도 어르신 카.. 2015. 11. 15.
미안합니다. 차츰, 점점 뻔뻔해지고 있습니다. 참 애매한 나이입니다. 미안합니다. 전철을 타면 '경로석'(?)에 마음 놓고 혹은 태연하게 앉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일반석에 앉으려고 두리번거리기도 멋쩍습니다. 어디에도 마땅한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곧잘 쓸쓸해집니다. 그나마 좋은 나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용기를 내어 그 경로석에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너하고 나하고 누가 더 늙었는지 맞장을 뜨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경로석'을 두고 걸핏하면 시비가 붙었지 않습니까? 그때는 차라리 나이를 써 붙이고 다니는 게 편리하지 않을까 싶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홧김에 혹은 성질 급한 사람이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일이 벌어지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 그 야단이 종식된 건 '연령표(年齡表)' 같은 게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엉뚱하다고 생.. 2014. 12. 14.
아저씨! 잠깐만요! “아저씨! 잠깐만요!" ♬ 소년이 전철을 타고 갑니다. 소설의 한 장면입니다. 소년에게는 전철은 이런 곳입니다. 말하자면 낯설게 혹은 역겹게, 짜증나게…… 그렇게 느껴질 요소들이 다음과 같이 열거됩니다. 검버섯으로 뒤덮인 주름진 손등, 손잡이와 함께 흔들리는 하트 모양 귀고리, .. 2014. 11. 26.
나의 창(窓) : 노인의 모습 Ⅰ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 오른쪽 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커피숍 2층의 창(窓)입니다. 오늘 점심 때, 그 언저리까지 가서 해외근무를 할 후배를 전송하는 식사를 하고 내려오다가 올라가봤습니다. 그와 헤어져 옛 교육부 편수국 선배 두 사람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다들 그야말로 '올드보이(old boy)'가 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더 좋은 인간이 되려면……"이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 "예" 대답을 하는 간간히 저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참 좋은 말씀이구나, 하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Ⅱ 종일 비가 오락가락해서 불쾌지수 체감도가 높습니다. 경춘선 전철이 곧 출발할 즈음에 서른쯤의 젊은이가 바로 옆자리의 외국인 두 명에게 벌컥 화를 냈습니다. 젊은이는 인상이 매우 날카로웠습니.. 2013. 7. 12.
노인암살단 Ⅰ 가령 아침나절의 상봉역에 가보면, 아무래도 늙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등산복'(아웃도어룩?)을 입고 모여 있습니다. 경춘선 열차가 들어오면 우루루 올라가 자리를 잡기 때문에 이후의 역에서 타는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먹고살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게 된 것이 사실이구나.' '그렇긴 하지만 아직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라에서는 이런 걸 알고 있나?' '이런 현상을 그냥두어도 괜찮은 걸까?' Ⅱ 50대는 노인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겠지요? 그럼 60대는 어떻습니까? 60대도 요즘은 아직 노인축에 들지 못한다는 말은 '정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젊은이들로.. 2012. 12. 30.
후순위라도 괜찮겠습니까?-퇴임을 앞둔 선생님께 Ⅲ 12월입니다. 연일 기온이 떨어지니까 이젠 겨울입니다. 퇴임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준비, 그 준비가 미흡하니까 퇴임하면 곧 순식간에 늙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몇 년 더 살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 아침에 더러 경춘선 ITX 열차를 탑니다. 물론 일반 전철을 더 자주 탑니다. ITX(Intercity Train eXpress)는 '청춘(靑春) 열차'라고도 부르는 고급 열차여서 일반 전철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KTX에 버금간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청춘! 그렇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열차는 젊은이들이 많이 탑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곧잘 값이 싼 일반 전철을 타고, 그리 바쁘지도 않을 것 같은 ──이게 바로 착각이겠지요── 젊은이들은 '청춘' 열차를 탑니다. 선생님께서는.. 2012. 12. 3.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필레머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박여진 옮김, 토네이도미디어그룹, 2012 지난여름 산은 저렇게 부풀어 오르다가 어디가 툭 터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었습니다. 요즘은 아주 조용합니다. 그렇게 몇 달을 조용하게 지낼 것입니다. '어디 두고 봐라. 나는 기어이 다시 돌아온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러니까 서글프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길,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긴 합니다. 감동했다는 사람이 이 사람 저 사람 여럿에게 사준 책을 나도 받았습니다. 처세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는 듯 혹은 이 책은 정말로 제대로 된 처세술을 알려준다는 듯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 오늘날 서점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 2012. 11. 29.
소극적으로 살기의 즐거움 전에도 소개한 적 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버트런트 러셀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논문을 쓸까 생각 중이라고 너스레를 뜰고 난 다음, 그 일곱 가지 부류의 기본에 속하는 사람으로 ❶ 계속되는 변명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❷ 지나친 근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❸ 스포츠 이야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을 들었습니다. 그가 그 다음으로 든 지겨운 사람은, ❹ 현학적인 태도로 지겹게 하는 사람, ❺ ( ), ❻ 허풍, 즉 자화자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말하자면 ‘속물’, ❼ 지나친 활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 최악의 부류로 거의 예외 없이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여성들이여! 어쩔 수 없이 인용합니다. 미안합니.. 2012. 7. 10.
노인·늙은이 "노인" "늙은이" 서울시가 공식 문서나 행사에서 '노인'이란 말을 안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한창 의욕을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거나 살아가는 분들을 예전처럼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상대로 '노인'을 대체할 말을 공모해 우선 '노인복지관' '.. 2012.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