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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by 답설재 2016. 2. 11.

어사연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궁리 2009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서문이 꼭 다시 한 번 읽겠다고 생각한 책 『만남, 죽음과의 만남』을 쓴 정진홍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습니다. 그쯤 나이가 들면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것도 까만 옛일이 되고, 내 생각이나 결정만이 옳다고 여겨 고집 부리던 일도 우스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부럽고, 아쉽고, 그래서 시샘도 하고, 다툼도 하고, 체념도 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하기도 했던 일도 '그것 참!' 하는 한마디 혼잣말로 다 치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두려움도, 죽음을 직면하리라는 예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처연해지는 절망도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습니다.(9)

 

"일흔이 넘으면,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다."

'정말 그래!' 싶었습니다.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필자가 쓴 열네 편의 글을 엮었습니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노년으로부터 인생의 길을 물었다는 의미일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노년에 이르러 드디어 인생의 길을 물었다'로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잊지 않고 싶은 부분만 옮겨봤습니다. 그러니까 비망록(備忘錄) 같은 것입니다.

가령, 어느 중학생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이 쌓여간다는 것!"이라고 한 데서는 그 소녀가 나를 보고 "여태 뭘 하며 무슨 재미로 살았는가?" 묻는 것 같았습니다.

 

 

<10대(중학생 배윤슬)>

● '나이 든다는 것은 추억이 쌓여간다는 것!'(31)

● 내가 나이 들고 싶지 않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점점 약해지는 신체와 생각 때문이다. (……) 피부와 몸매는 젊음을 잃어가고 체력이 떨어진다. 또 기억력도 서서히 나빠지고, 도전 정신도 없어지고, 점점 옛것을 고집한다(33).

● 나이듦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철이 들고 경험이 쌓여 가는 것이다. (……) 어렸을 때보다 어떤 일을 해볼 만한 기회가 많아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다(33~34).

 

<10대(고등학생 배윤)>

● 버스에서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큰소리로 이야기하거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이나 태도를 지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때면 그냥 외면하고 피하게 될 뿐이다. 내 친구나 젊은 사람들에게 나는 짜증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낡은 사고방식, 교양이 부족한 매너, 깔끔하지 못한 외모……(42).(10대, 고등학생)

● 가끔은 주름살 많은 내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며 설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나는 즐거울 것이다(46).

 

<20대(조향경)>

●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거리에서 엄마와 비슷한 연령의 어른을 보면 가슴이 메어왔다. 그리움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49).

● '요즘 젊은 것들은……' 하시며 젊은이들의 행동에 불평을 늘어놓는 어르신은 마치 자신은 젊은 시절이 없었다는 듯이 말씀하신다. 어르신 본인도 젊은 시절을 보내며 부모님 속도 썩이고 반항도 하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 시절이 있었을 텐데(57).

 

<20대(류승남)>

● 어떤 어르신들은 항상 밝은 미소와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며 남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는 반면 몇몇 어르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분들도 있다(94).

● 몸이 건강한 어르신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타인과도 잘 어울리며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삶에 여유가 있다(100).

 

<40대(정은숙)>

● "(……)엄마 아빠 늙으면 엄마는 중랑요양원에 아빠는 시립요양원에 보내줄게. (……) 늙으면 요양원에 가는 거 아니야? 엄마 아빠는 자주 싸우니까 떨어져서 살면 안 싸우고 우리가 가끔 찾아가면 되지."(110).

● 노인 유품이라고 간호사가 건네는 약봉투에는 색이 바랠 대로 바란 장난감 반지가 세 개 들어 있었다(119).

● "저는 화장실 갈 힘이 없어서 기저귀를 차야 할 정도가 아니면 끝까지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식사하고 화장실 갈 힘이 없다면 (……) 요양원에 오기 전에 살던 내 삶의 일부를 인정해주려 귀기울여주는, 노인을 친구처럼 대해주는 직원들이 있어야 하고 방을 혼자 쓰게 하라고 하면 꼭 우리 요양원에 와서 살 거예요."(120)

 

<50대(강의모)>

● 노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문을 떼면 대부분 사람들의 첫 반응은 비슷했다. "그걸 뭘 생각해. 어차피 곧 올 거고 미리 생각해봐야 서글프기만 하지."(143).

● 한 선배는 회사를 그만둔 지 벌써 10여 년이 가까운데도 아직도 자리를 뻇긴 것에 대한 한탄으로 후배들의 짜증을 돋우었다. (……)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한 선배한테서는 이런 말도 들었다. "진짜 퇴직은 내가 회사를 그만둔 시점이 아니다. 집사람이 나의 퇴직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때가 진짜 퇴직이다." 왠지 마음이 애잔해지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147).

● B씨가 말하기를 바람직한 모습은 잘 모르겠고, 이런 모습만은 절대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들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내가 왕년에……"를 남발하면서 스스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노인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고 (……)(151)

 

<60대(김용수)>

● 나이 들고 늙는 것을 싸워 이겨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면 친구로 삼아야 한다(160).

 

<80대(유재완)>

● 월급봉투를 내놓으면서 '내가 이렇게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고 의기양양했는데 이제 조락(凋落)의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슬퍼진다고 했다(197).

● 애들(손자손녀) 초등학교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으로 생일 축하 카드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보내주었다(203).

● 언젠가 홀로 남을 때를 대비해 '홀로서기'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내의 가사를 도우면서 젊어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집안일, 즉 밥하기, 설거지, 장보기, 세탁기 돌리기, 다리미질, 청소 등을 느리고 둔한 손으로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204).

●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어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떠나겠는가. 이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206~207).

- 부부나 친척, 친구, 이웃 간에 맺힌 것이 있으면 빨리 풀어야 한다.

- 자식들에게 누가 될 만한 일을 찾아서 미리미리 없애야 한다(옷, 앨범 등 소지품)

- 남기고 싶은 말(수필, 녹음)

- 유언장 쓰기(영정과 수의 마련, 매장 방식, 장지, 인공호흡기 제거 문제, 상복, 조의금 처리 문제, 재산 분배 비율 문제 등)

 

<어사연 대표(유경)>

● '인생시계' 그리기 : 평균수명 80세 시대이므로 80세를 24시에 오도록 표시, 60세는 저녁 6시, 70세는 밤 9시……(219)

● 제대로 나이 먹기 : "늘어나는 나이와 함께 오랜 세월 쌓인 경험과 경륜과 지혜와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뛰따르는 세대에게는 어른, 선배를 모시는 자부심이 저절로 생기며 모두가 높이 받들어 우러르고 싶은 권위가 되는 것(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