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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미안합니다. 차츰, 점점 뻔뻔해지고 있습니다.

by 답설재 2014. 12. 14.

참 애매한 나이입니다. 미안합니다. 전철을 타면 '경로석'(?)에 마음 놓고 혹은 태연하게 앉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일반석에 앉으려고 두리번거리기도 멋쩍습니다. 어디에도 마땅한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곧잘 쓸쓸해집니다.

 

그나마 좋은 나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용기를 내어 그 경로석에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너하고 나하고 누가 더 늙었는지 맞장을 뜨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경로석'을 두고 걸핏하면 시비가 붙었지 않습니까? 그때는 차라리 나이를 써 붙이고 다니는 게 편리하지 않을까 싶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홧김에 혹은 성질 급한 사람이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일이 벌어지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그 야단이 종식된 건 '연령표(年齡表)' 같은 게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혹은 예상도 하지 않은 변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곳이 꼭 경로석만은 아니고 장애인석도 되고, 임산부석도 되고, 영유아 동반자석도 되는 것으로 바뀌어버리자 "누가 더 늙었는지 까보자!"고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 좌석에 앉는 사람들의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인정된 것입니다. 그러니 저 같은 어정쩡한 나이가 그 좌석에 턱 하니 앉아 있어도 "젊은 놈이 버르장머리 없이!"라고 호통을 치는 호기로운 사람도 일시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정은 복잡해서 누가 어떤 사정인지 일일이 따져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세상이 좋아진 것인지, 그렇게 앉아 있으면 괜히 불안하니까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뭔가 불안한 세상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호기롭던 노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싶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자리를 잡지 못했을 경우입니다.

상노인이 보면 아직 "귀때기가 새파란 녀석", "머리에 피도 덜 마른 녀석" "경로당에 가면 심부름이나 해야 할 젊은이"가 분명하지만 머리가 허옇고 정수리의 머리는 거의 다 빠져버렸습니다. 게다가 몸이 불편해서 앉자마자 졸더라도 어디 좀 앉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별 수 없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둘째치고 '진짜' 노인도 서서 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 아닙니까?

 

그럴 땐 어디에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경로석·임산부석·장애인석·영유아동반자석 앞에? 혹 누가 양보해주는가 보기도 하고? 아니면, 자리가 나면 잽싸게 앉으려고? 좀 치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구차스럽게 그러지 말고 일반석 앞에? 넓적다리를 허옇게 내놓은 젊은 여자들,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고 열심히 들여다보는 젊은이들 앞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음흉한 노인들은 젊은이들 기(氣)를 받으려고 그런 애들 앞이나 옆자리를 좋아한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일반석 앞에는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었고, 빈자리가 있어도 앉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자리가 빈 걸 모른 척합니다. 정말 수치스럽습니다.

 

이제 딱 한 곳이 남았습니다. 출입구입니다. 문마다 양쪽에 서 있을 수 있고 여덟 개의 문이 있으니까 한 전동차마다 열여섯 자리나 됩니다. 한동안 거기에 서서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곧 그 자리도 마땅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작 젊은 사람들은 아뭇소리 않는데 나이 지긋한 어떤 사람이 드나들 공간을 충분히 비워주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툭 치며 영 못마땅해 했습니다. "문간을 가로막고 서서……"

'아, 정말……'

'자동차를 갖고 다녀야 할까? 죽으나 사나 그래야 할까?'

 

 

 

지하철에서의 작은 양보? 누구에게? 노인에게도? 어디 그렇게 씌여 있습니까?

 

 

 

 

 

 

 

아무래도 노인들의 자리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까? '노인들이 설 자리'…………

"시대에 뒤떨어진" "세상 물정 모르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꼴통이 되어버린" 경우를 빼면, 노인들도 이젠 무턱대고 양보받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살펴보십시오! 어느 노인이 일반석의 젊은이 앞에 서서 양보하기를 기다립니까? 좌석 수가 적거나말거나 양쪽 끝의 그 세 자리장애인·노약자·임산부·영유아동반자석을 염두에 두고 그곳에 모여 서서 눈치를 보거나 아예 체념하고 저~ 쪽에, 그렇다고 젊은이들 앞은 아니고,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 문간에 서 있던 나처럼 그렇게 어정쩡한 곳에 서 있습니다.

이미 "노인을 공경하자" 같은 걸 이야기하는 건 좀 우습거나 아무래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노인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노인'이란 것이 우선 수량으로 아주 많아지고 있다는 건 노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 말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 놓고 혹은 태연하게"

그렇게 표현한 건 속마음은 불편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느낌을 안고, 그렇게 줄어들었거나 이미 없어진 경로석에 곧잘 앉게 되었으니, 차츰 그리고 점점 뻔뻔해지는 자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전철의 좌석 문제 같은 이런 변화는, 아주 정상적이고 발전적·긍정적인 것인데 내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사회적으로는 다행일 것입니다. 다만 나 같은 인간만 문제일 뿐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나 혼자 체면 차리고 그래 봤자 별 수 있나,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서, 걸핏하면 그 장애인·노약자·임산부·영유아 동반자 좌석을 찾아 덥석 앉아버리는 짓을 하면서, 당국에서는 이런 변화를 조장한 게 아니냐, 그게 아니면 이런 변화를 못 본 척하는 것 아니냐'는 못돼먹은 생각까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나저러나 더 이야기해 봤자 별 수 없겠지요. "더 이상 늙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맹세하거나 다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꼴같지않게 점점 더 좋아지는 이 넉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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