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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의 창(窓) : 노인의 모습

by 답설재 2013. 7. 12.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 오른쪽 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커피숍 2층의 창(窓)입니다.

 

오늘 점심 때, 그 언저리까지 가서 해외근무를 할 후배를 전송하는 식사를 하고 내려오다가 올라가봤습니다. 그와 헤어져 옛 교육부 편수국 선배 두 사람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다들 그야말로 '올드보이(old boy)'가 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더 좋은 인간이 되려면……"이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 "예" 대답을 하는 간간히 저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참 좋은 말씀이구나, 하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해서 불쾌지수 체감도가 높습니다.

경춘선 전철이 곧 출발할 즈음에 서른쯤의 젊은이가 바로 옆자리의 외국인 두 명에게 벌컥 화를 냈습니다. 젊은이는 인상이 매우 날카로웠습니다. 눈초리나 어디나 면도날 같아서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겠구나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마 그 외국인 남녀가 핸드폰으로 무슨 소리를 좀 내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당황한 표정이었고, 황당해하였는데, 젊은이는 그런 꼴조차 못 보겠다는 듯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아주 박살을 낼 수도 있다는 듯 펄펄 뛰었습니다. 열이 너무 올랐는지 윗옷 하나를 벗어서 가방에 구겨 넣기까지 했습니다.

 

 

 

 

노인 한 분이 젊은이를 불렀습니다. 그 젊은이로부터 두어 좌석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노인이었습니다.

"이봐, 그렇게 못마땅하면 나하고 자리를 바꿔, 응? 내가 바꿔줄게."

 

노인은 크게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젊은이에게는 잘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모두들 그 노인을 바라봤습니다.

젊은이는 "싫다"고 했거나 "괜찮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 노인에게라면 좀 응석을 부려도 좋았을 것입니다. 집에 할아버지가 없다면 더 그럴 것 아닙니까? 모두들 제 손자에게라면 깜빡 죽지만, 요즘 남의 아이들 응석이라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노인이 어디 있습니까?

 

 

 

 

"이봐! 무슨 성질을 그렇게 내나?"

"야, 이 사람아!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뭘 그러나!"

"이 젊은이가 보자보자 하니까!"

"좀 조용히 하게! 자네가 더 시끄럽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봐, 그렇게 못마땅하면 나하고 자리를 바꿔, 응? 내가 바꿔줄게."

자신의 손자를 대하듯 나직나직하게 이야기하던 그분을 한 번 더 쳐다보고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바로 그런 사람이 '노인'인데……

 

나는 정말이지 몇 살이 되면 그런 마음이 들는지 아득합니다.

나란 인간은 어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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