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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대표팀의 '동네축구' 유감

by 답설재 2013. 6. 24.

 

 

 

미안합니다. 축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축구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계 방송 시청조차 요령부득일 정도는 아니지만, 축구에 대해 뭘 좀 제대로 아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이겨야만 속이 시원한 건 열렬한 팬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팀이 이겨봤자 나에게 무슨 변화나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다못해 누가 점심을 한 그릇 사 준 적도 없고 "이번 응원에는 당신의 힘도 컸다"고 격려해주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내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의 종류가 단 한 가지라도 줄어들거나, 무슨 보너스처럼 그 일들 중 가장 간단한 일의 해결 방법이 공짜로 주어지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도 손에 땀을 쥐고 머리가 "띵~" 하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는 자신이 참 어처구니없고 기이하게 느껴질 때조차 있었고,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세상이 다시 조용해지고, 나의 상태는 경기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걸 확인하게 되면 씁쓸하기조차 했습니다. 

 

 

 

우선, 우리 축구팀이 싸웠다 하면 승리를 하는 일은, 거의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붙었다 하면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처럼 "싸우면 이겨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실감했습니다. '단순한 정서'라고 하는 건 참으로 단순한 논리로써 흥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도 바로 나처럼 우리 축구팀이 "붙었다 하면 이겨야 한다"고 여기는 것 아닌가 싶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정말 이래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 이래야 하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18일 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 한국-이란전 이야기입니다. 그날 밤,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우리 팀은 이란에 0:1로 패했습니다. 그러나 찜찜해 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우리 한국 팀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결정된 경기이기도 합니다. 3위인 우즈베키스탄에 비해 골득실 차에서 우리가 1점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신문기사 제목은, 예를 들어 「8연속 월드컵 진출의 날… 아무도 축배를 들 수 없었다」 「손발 따로 노는 '답답 축구'… 2002년에서 해법 찾아라」였습니다.

 

"세계 축구는 세밀하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든지 "전술적인 시스템이 결여돼 있다" "수비 라인과 공격 라인 사이가 너무 멀다" "특히 공수 전환 과정에서 연결이 미흡하다" "팀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평가도 있었지만, 심지어 "197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 "동네 축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등장했고, 이튿날 점심 시간의 화제 속에서는 "뻥 축구"라는 단어도 들렸습니다. 말하자면 "뻥!" "뻥!" 차서 공이 제대로 날아가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인 축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으며 가장 곤혹스러울 사람은 아마도 최강희 감독일 것입니다.

 

지금 나는 최 감독의 입장이 되어보고 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큰 무대에서 팀을 이끌기 어려운 리더" "대회가 주는 중압감을 경험하지 못한 리더" "선수단 장악 능력이 미흡한 리더"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란 축구팀 감독으로부터는 "현대축구를 모른다"는 비아냥까지 들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런 감독인가?'

'아니, 당연히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나는 그날 밤 경기에 대한 후일담들을 읽어보며 '나 같으면' 지금 어떤 심경일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고, 입맛도 다 떨어졌을 것 같고, 우선 가족들·제자들·후배들 보기에 얼마나 민망할까 싶었습니다.

 

'나 같으면, 다시 축구장에 나갈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좋을까?'

 

사실은, 우리는,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라도 최 감독의 심사를 한 번쯤 헤아려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그가 세운 목표대로 우리나라 대표팀을 8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시켜 놓고도 "패장(敗將)"처럼 물러나게 된 것 아닙니까? 2005년 전북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해 2005 국내 FA컵, 2006 아시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강희대제"라는, 청나라 강희제에 비유한 별명까지 달고, 2011년 그가 아니면 대표팀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평가로써 '사령관'이 된 것 아닙니까?

 

 

 

 

○ "뻥축구"? 어느 감독이, 어느 선수가, 그처럼 큰 경기에서 "뻥축구" "동네축구"를 하고 싶겠습니까?

 

○ 우리 팀은 운(運)조차 없었습니까? 운이 없기로 말하면, "승점 14, 승 4, 무승부 2, 패 2"는 우리와 똑같고, 골득실에서 +5로 우리보다 단 1점이 모자라 최종 예선 A조 3위를 차지한 우즈베키스탄 대표팀은 얼마나 운이 없습니까?

"우즈베키스탄 따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지만, 만약 그들이 우리보다 골득실에서 1점이 많아서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면, 그들은 지금 얼마나 좋아할 일인가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축구는 그런 것 아닙니까? 그들은 지금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뻥 축구, 동네 축구를 하고도 본선에 나간다니……"

 

○ A조 예선이 실력대로 안 됐습니까? 경기 성적표가 언제나, 틀림없이, 실력대로 나온다면 경기는 왜 하겠습니까? 멋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서 각 나라 대표팀의 실력을 입력하면 '주루룩' 그 성적이 계산되어 나올 것 아닙니까? 더운데 지쳐 가면서, 더구나 다치기도 하고, 죽도록 해봤자 좋은 소리 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경기를 뭐 하려고 하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우리 대표팀이 이기면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 중의 하나라고 자부합니다. 진짜로 몸이 불편한데도, 걸핏하면 병원에 드나드는 주제에 모든 일 제쳐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싸우면 이기기"보다는 즐겁게 싸우고, 그렇게 싸워서 이기면 더 좋겠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졌다 해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게 해주면 더 좋겠습니다.

 

타히티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 나라는 이번에 스페인과 붙어서 0:10으로 대패했는데, 그따위 성적을 내고도 "세계 최고 선수와 뛰어 행복"하다고들 했답니다.

희한한 것은, 국가 대표 23명 중 22명이 우체국 직원, 짐꾼, 경비원이랍니다.

 

그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맞아. 축구도 하고, 우체국 일도 하고, 그러면 더 좋겠구나. 베이징 올림픽 때 미국 양궁 선수도 무슨 직업을 별도로 가진 아저씨였는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말고 공만 차면서, 활만 쏘면서, 무엇을 자꾸 던지면서, 날만 새면 달리면서 일생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선수 생활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체국 직원을 하면서.

물론 그러자면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는 건 나도 잘 압니다.

 

 

 

 

스페인 : 타히티 10:0.

그렇다고 해서 타이티가 '큰일난 나라'도 아니고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나라'도 아닐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축구 대표팀의 다음 감독이 우리를 믿고 좀 으스대기도 하며 등장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성원을 믿고, 1년 후 브라질에서의 성적이 기대 이상이든 이하이든 우리 대표팀의 감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든지 자랑스럽게, 행복한 마음으로, 즐겁게 등장하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

정말이지, 이번 일은, 최강희 감독을 생각하면, 우리 대표팀이 앞으로는 경기만 하면 이기기를 바라는 바로 내 성미에도 별로 달갑지 않는 일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실력대로 이루어지고, 기대대로 이루어지고, 게다가 운조차 좋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런 일이 이 세상에 그리 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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