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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도 한때는 새것이었네"

by 답설재 2021. 7. 4.

 

 

모처럼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침을 굶고 가서 채혈을 했고 러닝머신에 올라가서 걷고 뛰어야 하니까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울까 싶어서 그걸 샀지만 내키지 않아서 차에 갖다 두고 네 가지 검사를 더 받았습니다.

모처럼이었으므로 그동안 변한 것도 있어서 질문을 해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친절합니다. 그렇다고 "참 친절하시네요" 하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노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친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뭘 물으면 간단히 대답하면 될 걸 가지고 아예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걸 보면 '노인이라고 이러는구나' 싶지만 끈기 있게 듣습니다. 그렇게 어린애에게 설명하듯 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세요" 하거나 "나는 이 병원 십삼 년째 드나듭니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깐이라도 참 어색해지겠지요. 혹 그 설명 중 잘못 들은 거나 애매한 걸 다시 묻는 건 그를 짜증 나게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한 마디는 참 친절한데 한 번만 더 물으면 본색이 드러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노인네가 또 사람을 미치게 하네!' 순간 미간에 짜증이 돋으며 나를 아주 핫바지 취급합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검사를 받는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기다리는 데 들어갑니다. 대기석에 앉아서 그렇게 기다리며 지켜보면 젊은이들도 곧잘 질문을 합니다. 젊은이가 반문하면 그건 설명이 미흡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도 웬만하면 참고 앉아 있습니다. '나는 노인이니까 웬만한 건 묻지 않아야지' '참고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주니까.' 

 

"이 모든 것이 한때는 새것이었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도 한때는 새것이었네. 나도 새것이었네. 내가 태어난 시각에 나는 지구에서 가장 새로운 것이었네. 그런 다음 시간이 나한테 작동하기 시작했네. 자네한테 그러할 것처럼 말이네. 드라고, 시간은 자네를 먹어치울 것이네. 자네는 언젠가 좋은 새 집에서 좋은 새 아내와 앉아 있을 것이고, 자네의 아이들이 돌아서서 자네 두 사람에게 '왜 그렇게 구식이세요?'라고 말할 거네. 그날이 되면, 자네가 이 대화를 기억하길 바라네."

드라고는 마지막 남은 스튜와 마지막 남은 샐러드를 먹는다.

"우리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크로아티아에 갔었어요. 저와 어머니, 그리고 제 동생들 말이에요. 자다르로 갔죠. 어머니의 부모님들이 그곳에 사시거든요. 그분들은 이제 상당히 나이가 많으셔요. 당신의 말처럼 그분들도 시간에 추월당했죠. 제 어머니는 그분들에게 컴퓨터를 사드렸어요. 우리는 그분들에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드렸죠. 그래서 그분들은 이제 인터넷으로 쇼핑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고, 우리들은 그분들에게 사진들도 보낼 수 있어요. 그분들은 그걸 좋아하셔요. 그분들은 상당히 나이가 많으세요."

"그래서?"

"당신도 선택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에요."

 

존 쿳시(J. M. Coetzee)의 소설《슬로우 맨 SLOW MAN》(왕은철 옮김, 들녘 2009, 233~234)의 한 장면입니다.

누구의 이야기에 공감합니까?

"너도 늙는다"는 노인입니까, 아니면 당신보다 더 늙은 우리 어머니의 부모도 컴퓨터를 배워서 잘하고 있다는 드라고라는 젊은이의 말에 공감합니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양쪽 다 그렇습니다. 예외?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