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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아무래도 개망초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by 답설재 2021. 6. 28.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이 개망초 밭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하면서 아무래도 나는 개망초과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꽃을 좋아합니까?"

미팅 같은 건 내겐 이제 혹 저승에 가서나 있을지 모르지만 가령 그렇게 물을 때 뭐라고 답하면 좋겠습니까?

"전 장미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답하면 돋보이거나 어울리거나 그 외모조차 장미 같아 보이거나 할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그게 바로 파란편지라니, 우습지 않겠습니까? 나 참 같잖아서...

 

"저는 수선화를 좋아합니다"

"저는 히야신스를 좋아합니다"

"저는 붓꽃 마니아입니다"

"저는 고흐처럼 해바라기 광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국화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자귀나무 꽃을 좋아합니다"

"저는 저 여성스러운 수국을 좋아합니다"

......

사실은 그동안 꽃을 감상할 때마다 '이 꽃을 좋아한다고 해볼까?' "이 꽃으로 정할까?" 하고 쓸 데도 없는 답안을 작성했다가 지우고 작성했다가 또 지우고 했지만 마땅한 것 같아서 확정할 만한 답이 떠오르질 않았는데 이 여름에 마침내 그 답을 마련한 것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개망초꽃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개망초라니, 그게 께름직합니다.

우선 '개판'이 생각나고 '개두릅' '개돼지' '개떡' '개똥' '개똥밭' '개똥벌레' '개똥참외' '개망나니' '개망신' '개머루' '개밥' '개불알꽃' '개뿔' '개살구' '개새끼'...

개똥벌레나 그냥 괜찮을까요? 다른 건 거의...

그렇다고 요즘 젊은이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들은 이미 '개사랑해요' '개맛있네요' '개귀여워요'처럼 대화하는 게 일상화되었는데 뭐 어때서요?" 하기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 늙은 주제에?

 

그런데 망초도 아니고 거기에 '개'가 붙은 개망초라니...

하필이면 개망초라니...

누가 이름을 붙여도 아주 고약하게 붙이지 않았습니까?

그를 찾아가서 고쳐달라고 할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그게 누군지 알아낼 수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지요.

그냥 익숙해지는 수밖에.

어릴 때 이미 익숙했던 저 개망초.

이름만 익숙해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저 개망초.

포근한 생김새의 저 개망초.

꽃이 너무 커서 부담스럽거나 새빨갛거나 그렇지도 않은 개망초.

내가 일부러 키우지 않아도 웬만한 곳에선 찾아볼 수 있을 개망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내 생애도 개망초 같구나 싶고, 그게 언감생심이라면, 어째서 당신의 삶을 저 청순한 모습의 개망초에 비유하느냐고 따지면 "그러면 앞으로는 개망초처럼 살도록 노력할게요" 하면 될 것 같은 개망초.

 

여러분! 나는 개망초처럼 살겠습니다.

그리 알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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