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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전문가

by 답설재 2021. 6. 15.

 

 

보일러가 이상했습니다. 방 1이 따뜻하면 방 2가 냉방이 되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방 2가 따뜻해지면 돌연 방 1이 냉방이 되었습니다.

방 1, 2가 골탕을 먹이자고 약속해놓고 번갈아가며 약을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방 1, 2의 온도조절기를 동시에 켜놓고 약 한 달간 그런 현상을 겪었으므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방 1에서 지내다가 2, 3일 후에는 방 2에서 지내야 하는 게 성가시고 한심했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기거하는 방은 딱 둘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꼴이어서 오늘은 방 1에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내일은 또 방 2에 이부자리를 펴면서 이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보일러 관계자들은 그럴 리 없다고 했습니다. 이곳저곳 살펴보고 온도조절기 앞에 서서 이것 좀 보라고, 멀쩡하지 않으냐고 주장했습니다. 보일러가 정상 가동되는 공간의 열기가 냉방 쪽으로도 흘러와서 서로 비슷한 기온을 나타내었으므로 잠시 와서 살펴보는 그들로서는 그런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내가 "방바닥에 손을 대어 보세요. 이게 어디 보일러가 작동되는 방입니까?" 하면 관계자는 그냥 바라보기만 하거나 마지못해 잠시 손을 대어보며 "도대체 뭐가 이상한가요? 그래서 (온도조절기의 운전 모드를 가리키며) 지금 보일러가 가동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내가 답답한 표정으로 "그 온도조절기는 밤낮없이 24시간 가동되어도 이 방이 따뜻해지진 않습니다." 하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희한한 노인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 주장은 원시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관계자들은 대체로 낮동안, 그것도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아침나절에 다녀갔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밤 동안의 싸늘한 방바닥을 보여줄 수가 없었고, 낮 동안의 방바닥은 실내의 온기와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방 안의 기온이 올라가면 그런대로 미지근해서 손바닥을 대어 보면 냉방이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보일러 시스템을 조정하는 정체(혹 인간을 미워하는 AI 같은 것?)와 그 관계자들이 음모를 꾸며서 나를 골탕 먹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따뜻한 방 온도조절기의 전기 스위치를 꺼버리고 냉방의 온도조절기를 한껏 올려보았습니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한 가지 더 발견되었습니다. 온도조절기를 쓰거나 말거나(온도조절기를 켜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거나 말거나 방 하나는 지글지글 끓고 다른 방은 냉방인 현상이 그대로 이어져서 어느 때는 온도조절기를 켜놓은 방이 따뜻하다가 그다음엔 느닷없이 온도조절기를 꺼놓은 방이 따뜻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관계자들이 번갈아 와서 "지극히 정상 가동 중"이라고 한 그 온도조절기는 폼으로 붙어 있어서 어느 방을 지글지글 끓게 하고 어느 방을 냉방으로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귀신'(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으므로 귀신보다 더 기이한 그 무엇!)이 알아서 선택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나는 관계자들을 계속 불러대었고 그들은 도리 없이 계속 불려 왔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내가 노인이어서 이 주택을 지글지글 끓는 찜질방으로 쓰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나서서 "내가 온도조절기 하나 다룰 줄도 모르는 노인네 같습니까? 내가 이 집을 찜질방으로 쓰려는 것 같습니까?" 하고 열을 올려도 그들은 한결같이 데면데면할 뿐이었습니다. 이 늙은이가 찜질방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숨기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찜질방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는구나 생각하고, 그들도 그들의 그 짐작을 직접적으로는 표현하지 않으려는 듯했습니다. 나는 결코 찜질방에 욕심이 없다는 걸 주장하는 꼴이었고, 그들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으면서 속으로는 '찜질방으로 쓰고 싶으면서 뭘 그러느냐?'는 꼴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럭저럭 두 달이 다 되어가자 나는 이 나라에 보일러 가지고 나처럼 골탕을 먹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고,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들어 있는 인터넷에는 보일러에 관한 각종 부품 소개와 여러 가지 '에러'에 대한 내용만 나열되어 있지 '귀신 곡할 노릇'에 관한 내용은 눈을 닦고 봐도 없었습니다. '아, 인터넷에 없는 것도 있구나!'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나이 지긋한 '관계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처음 보는 관계자였습니다. 아내가 그 관계자를 반기며 인사했습니다. "기사님! 어서 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나도 한 마디 했습니다. "기사님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고위직 같아." 아내와 관계자가 나를 바라보았고 그 관계자가 대답했습니다. "네, 고위직 맞습니다."

고위직은 그동안 우리 집 보일러가 그런 요술을 부리도록 조정한 우두머리였을까요?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보일러 전문가였을까요? 실내로 들어와서 한 바퀴 둘러보고 보일러실로 가더니 한참만에 다시 들어와서 방 1 온도조절기를 만졌고, 또 보일러실을 다녀와서는 방 2 온도조절기를 만졌고, 다시 보일러실을 다녀와서는 거실의 온도조절기를 만졌고, 다시 다녀와서는 메인 온도조절기를 만졌고, 그러자 방 1, 방 2가 서서히 동시에 따스해지기 시작할 무렵 고위직은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나는 그가 좀 더 머물러 방 1, 방 2의 변화가 확실해졌을 때 돌아갔으면 싶었는데 그는 아무래도 그렇게 할 것 같질 않았습니다. 과연!

"보시고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는 명함을 내밀며 단 한 마디만 남기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전문가구나!'

'나도 내 생애를 전문가로 보낼 수 있었더라면...' 싶었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전문가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나는 어정쩡한 사람이었으니...'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나는 하얀 캔버스가 좋다.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면 새하얀 스크린에 자신이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늘 두근거린다.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거나, 그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서 있노라면 이런저런 이미지가 솟구치다가는 가라앉고, 솟구치다가는 가라앉고, 그러다가 이윽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게 된다. 때로는 머릿속이 공백이 된다. 거기서 눈을 감으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캔버스에서 '와앙' 하고 뭐라 형언하기 힘든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명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차츰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켜 주위의 공간에 퍼지고, 나는 그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다. 이리하여 하얀 캔버스에 온통 물들며 마음이 은은한 투명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지복의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눈을 뜨면 돌연 하얀 캔버스가 내게로 다가온다. 팽팽하게 긴장된 표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처럼 나를 도발한다.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자신에게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우환 에세이 「하얀 캔버스」의 시작 부분입니다(《현대문학》 2020년 12월호).

나는 이 에세이를 읽다 말고 그 전문가를 떠올렸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한지(韓紙) 전문가도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자신이 만든 한지는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주문한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하는 그 전문가의 표정에는 자존감, 자부심이 물보라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유독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갖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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