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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공인 어르신」

by 답설재 2015. 11. 15.

 

 

 

 

 

 

 

                                공인 어르신

 

 

                                                        박두순


이제 나는 어르신이 되었다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 카드'를 받고

국가 공인 어르신이 된 거다.

 

서울시와 국가가 공인한

어르신이니, 처신에 주의해야겠다며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마구 웃는다

늙었다는 것인데, 뭐 그리 좋으냐는 웃음이다

친구들도 어르신 카드를 받고 시무룩했다던데

나는 아직 덜떨어진 어르신일까

 

40년 가까이 시를 쓴 시인인데도

시 1년 원고료가 10만원도 안된다

나이값도 못하는 시인이다

어르신 한 달 지하철비 7만원이 거저

1년이면 84만 원이 공짜, 원고료 8배이다

시인보다 국가 공인 어르신이 낫다

이런 나라에 시인이 산다, 하.

 

 

 

                                          - <자유문학> 가을호-(까페 《오늘의 동시문학》에서 재인용)

 

 

 

 

 

 

 

 

  '별꼴'이라고 해야 할지, 시인은

  남들 다 받는 '수도권 전철 무임 승차 카드'를 받고 감개무량해 합니다.

 

  나는 오래 전에 받았습니다.

  처음엔 미안하고, 공짜여서 좋기도 하고, 나이드는 것도 괜찮다 싶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고,

  오히려 걸핏하면 짜증이 나고,

  노인 문제로 골치 아플 사람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괜히 화가 좀 나기도 하고,

  심지어 이래 가지고 어디 살 수나 있겠나 싶어질 때가 늘어나는 셈인데

  저렇게 좋아하는 시인을 보고

  갑자기 쑥스러워집니다.

 

  어떻게 하여 저렇게 나이들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시인이어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시인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선 살아가는 일부터 서로 다르고

  사실은 각자 살아가는 세상도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세상이 훨씬 더 쓸쓸해집니다.

  

 

 

 

 

2012.10.20.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서의 정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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