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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즈미 시키부 「내가 기다리는 그이가」*

by 답설재 2015. 12. 15.

1988년 2월 26일.

 

나는 시에 대한 논의를 아주 싫어한다…… 그보다는 천 년 전 일본 여성 시인 이즈미 시키부(974~1034)의 시 한 편을 좋아한다.

 

내가 기다리는 그이가

지금 온다면, 난 어떡하지?

이 아침 눈 덮인 정원은

발자국 흔적 없이 참 아름답구나.

 

이런 시가 지식의 도구가 아닌가? 그렇다, 지식의, 그리고 철학보다 더 심오한 차원에서.

 

― Czeslaw Milosz(체스와프 미워시)의 일기 『사냥꾼의 한 해』 중에서**

 

 

블로그 『삶의 재미』의 노루님이 댓글에서 보여준 시입니다. 그건 정말 나에겐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무얼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하는 시입니다. 더구나 체스와프 미워시라는 시인의 저 한 마디 평(評)도 시 못지않습니다.

 

노루님은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일기 『사냥꾼의 한 해 A Year of The Hunter』(1994)를 읽고부터 시인들의 산문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시인 Seamus Heaney의 산문집 『찾은 사람이 임자 Finders Keepers』를 소개했습니다. 또 두 시인은 공통적으로 "삶과 세상에 대해 진지하다"고 했습니다.***

 

『찾은 사람이 임자』에 대한 소감은 블로그 『삶의 재미』를 찾아가서 읽어야 하고, 나에게 써준 댓글, 댓글로 그냥두기가 난처할 정도로 빛나는 그 댓글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반은 저 아름다운 시 「내가 기다리는 그이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고,***** 반은 『사냥꾼의 한 해』의 첫 번째 일기, 이즈미 시키부의 시를 소개한 일기, 그리고 마지막 일기를, 그것도 이렇게 번역까지 하여 보여주신 노루님에 대한 고마움 때문입니다.

 

 

『사냥꾼의 일 년』은 미워시(Milosz)가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쓴 거지요.

이렇게 시작되네요.

 

1987년 8월 1일, 버클리.

끊임없는 놀라움, 매일, 내 생애의 77세를 시작하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면서도 정말 그렇다는 걸 나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끝나네요.

 

1988년 7월 31일.

프랑스의 인용문을 모은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올해 내 노트의 맺음이 될 구절을 찾았다 :

신이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당신이 더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신 게 내 잘못인가요? 이해하려고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 Maeterlinck.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Maeterlinck 같은 말을 준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찾은 사람이 임자』 「한때 위대했던 것들은」 / Czeslaw Milosz

(클릭하면 바로 갈 수 있는 주소) ☞ http://blog.daum.net/dslee/729

 

 

2013.2.3. 오후.

 

 

 

 

 

 

 

* 이 시에 제목은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우선 이렇게 이름붙여서 소개합니다.

** 여기에 인용하는 세 편의 일기는 모두 노루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 두 시인 모두 노벨문학상 수상자.

**** 이 시의 제목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 이즈미 시키부는 무라사키 시키부, 세이 쇼나곤과 함께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3대 여류 문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스캔들메이커로 이름을 날렸는데, 일생 숱한 염문을 뿌리며 1,500여 수의 와카를 남겼다.- 양은경, '일본사를 움직인 100인'(청아출판사, 2012)을 인용한 DAUM 백과사전의 글 첫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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