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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새우전傳」

by 답설재 2015. 11. 26.

새우전傳

 

 

함명춘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엔 내장처럼 버려진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향은 목포 앞바다였다고 어딜 가도 먹을 게 지천인 청정 해역에서

눈은 송곳같이 빛났고 가슴 속엔 잠시도 잦아든 적 없던 꿈이

물결치는 새우였다고 어느 날 어부들이 풀어놓은 그물에 잡혔는데

덩치가 성인만큼 커서 바로 곡마단에 자기를 팔아 넘겼다고 했다

눈을 떠보니 자기 몸엔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가 매어져 있었고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단원이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눕히곤

다리로 공을 굴리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사소한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은 수시로 채찍을 휘둘렀고 얼마 후

여러 개의 다리로 셀 수 없이 많은 공을 굴리게 되자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와 하루아침에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박수 소리는 그의 심장이었고 환호성은 그의 공기였으니

몇 년이 흘렀을까 식상한 관객들이 쇠공을 굴려보라는 요구에 못 이겨

쇠공을 들어 올리다 떨어뜨려 그는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관객들은 하나 둘 등을 돌렸고 단원들은 며칠을 짐짝 취급하더니

그나마 새우튀김을 해 먹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하라며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와 내동댕이쳤다는 것이다 그는 날마다

누가 날 목포 앞바다에 풀어놓아 달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지껄여 댔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몇몇의 행인만이

한 번만 더 헛소릴 하면 펄펄 끓는 국물에 처넣어버리겠다고 했고

아주 가끔 동네 아이들이 꽁꽁 뭉친 눈덩이를 던졌다 사라지곤 할 뿐

무릎까지 눈이 쌓인 어느 새벽, 그는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입었던 숭숭 구멍이 난 옷을 시장 입구에 벗어 놓은 채

어떤 이는 밤사이 얼음장 같은 시체를 응급차가 싣고 가는 것을

보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새벽에 목포행 첫 활어차가

나갔는데 출렁이는 짐칸 수족관엔 아주 큰 새우 한 마리가

잠든 채로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지만 더 이상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늘 그랬듯 새우 한 가득 실은 활어차가

텅 빈 눈길 속을 덜컹이며 노량진 수산시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 그가 벗어놓고 간 옷 속엔 굽은 등과 긴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새우 허물이 수북이 쌓인 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있었다

 

 

 

『현대문학』 2014년 9월호, 266~267쪽(원전 : 『현대시』 2014년 7월호)

 

 

 

 

2015.11.12.

 

                          

 

 

들어본 이야기 같습니다.

시장 입구에 버려진 사람 이야기, 종일 혼잣말을 하는 사람, 남쪽 해안 어디에서 어느 날 곡마단에 팔려서 일생을 보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입고 있던 누더기를 시장 입구에 벗어 놓은 채 사라졌다는 이야기, 밤사이 얼음장 같은 시체를 응급차가 싣고 가는 것을 어떤 이가 봤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 얘기는 이 얘기 그대로는 아니었습니다.

새벽, 첫 활어차의 바닷물 출렁이는 수족관 안 큰 새우 한 마리가 잠든 채로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 그럴 듯하긴 해도 아무래도 이 시인으로부터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새벽 그가 벗어놓고 간 옷 속엔 굽은 등과 긴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새우 허물이 수북이 쌓인 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

 

두 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아무래도 시인의 이야기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지 않은지,

어쩌면 내가 살던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 이야기, 혹은 내 친구 이야기, 심지어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좀 끔찍한 점이 느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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