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전傳
함명춘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엔 내장처럼 버려진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향은 목포 앞바다였다고 어딜 가도 먹을 게 지천인 청정 해역에서
눈은 송곳같이 빛났고 가슴 속엔 잠시도 잦아든 적 없던 꿈이
물결치는 새우였다고 어느 날 어부들이 풀어놓은 그물에 잡혔는데
덩치가 성인만큼 커서 바로 곡마단에 자기를 팔아 넘겼다고 했다
눈을 떠보니 자기 몸엔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가 매어져 있었고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단원이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눕히곤
다리로 공을 굴리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사소한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은 수시로 채찍을 휘둘렀고 얼마 후
여러 개의 다리로 셀 수 없이 많은 공을 굴리게 되자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와 하루아침에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박수 소리는 그의 심장이었고 환호성은 그의 공기였으니
몇 년이 흘렀을까 식상한 관객들이 쇠공을 굴려보라는 요구에 못 이겨
쇠공을 들어 올리다 떨어뜨려 그는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관객들은 하나 둘 등을 돌렸고 단원들은 며칠을 짐짝 취급하더니
그나마 새우튀김을 해 먹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하라며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와 내동댕이쳤다는 것이다 그는 날마다
누가 날 목포 앞바다에 풀어놓아 달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지껄여 댔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몇몇의 행인만이
한 번만 더 헛소릴 하면 펄펄 끓는 국물에 처넣어버리겠다고 했고
아주 가끔 동네 아이들이 꽁꽁 뭉친 눈덩이를 던졌다 사라지곤 할 뿐
무릎까지 눈이 쌓인 어느 새벽, 그는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입었던 숭숭 구멍이 난 옷을 시장 입구에 벗어 놓은 채
어떤 이는 밤사이 얼음장 같은 시체를 응급차가 싣고 가는 것을
보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새벽에 목포행 첫 활어차가
나갔는데 출렁이는 짐칸 수족관엔 아주 큰 새우 한 마리가
잠든 채로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지만 더 이상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늘 그랬듯 새우 한 가득 실은 활어차가
텅 빈 눈길 속을 덜컹이며 노량진 수산시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 그가 벗어놓고 간 옷 속엔 굽은 등과 긴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새우 허물이 수북이 쌓인 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있었다
『현대문학』 2014년 9월호, 266~267쪽(원전 : 『현대시』 2014년 7월호)
들어본 이야기 같습니다.
시장 입구에 버려진 사람 이야기, 종일 혼잣말을 하는 사람, 남쪽 해안 어디에서 어느 날 곡마단에 팔려서 일생을 보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입고 있던 누더기를 시장 입구에 벗어 놓은 채 사라졌다는 이야기, 밤사이 얼음장 같은 시체를 응급차가 싣고 가는 것을 어떤 이가 봤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 얘기는 이 얘기 그대로는 아니었습니다.
새벽, 첫 활어차의 바닷물 출렁이는 수족관 안 큰 새우 한 마리가 잠든 채로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 그럴 듯하긴 해도 아무래도 이 시인으로부터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새벽 그가 벗어놓고 간 옷 속엔 굽은 등과 긴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새우 허물이 수북이 쌓인 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
두 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아무래도 시인의 이야기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지 않은지,
어쩌면 내가 살던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 이야기, 혹은 내 친구 이야기, 심지어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좀 끔찍한 점이 느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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