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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선물」

by 답설재 2016. 2. 26.

 

누구를 만나러 갈 때는 꼭 '뭘 들고 가지?' 생각합니다. '빈손으로 어떻게?'

누가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도 그렇습니다. 준비해 놓은 건 없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고 해서 얘기를 나누는 중의 앉은자리에서라도 두리번거립니다. '내줄 만한 게 없을까?'

평생 그 생각을 가지고 지냈지만 그게 실천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추석에는 어느 고등학교 교문에서 이렇게 적힌 현수막을 봤습니다.

"선물 안 받고 안 주기 운동"

그런 현수막을 달아 놓으라고 문구까지 정해주었을 것 같고, '오죽하면……' 싶기도 하지만 한심하고 기가 막혀서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디로 가나…… 이 사회……'1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교육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교육'이고, 더구나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이 '교육'이니까 선물에 대해 얼마든지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곳이 '학교'가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뭘 하고들 있는 것인지……

 

 

 

일전에 『내가 사랑하는 시』(최영미)라는 책 이야기를 쓰며 그 책에 실린 에즈라 파운드의 「찻집」을 옮겨 놓았더니 콜로라도의 '노루'님께서 보시고 이렇게 썼습니다.

 

"찻집" 같은 시, 낭만주의보다는 고전주의 풍의 시가 Czeslaw Milosz (체스와프 미워시) 취향의 시라는 걸, 몇 편 읽은 그의 시 -- 예를 들면 "선물 Gift" -- 나 그가 엮은 시선집을 통해서 최근에 알게 되었네요. 그리고 그런("찻집" 같은) 시를 모은 시선집들이 많이 읽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갖고 있는, Roser Housden이 엮은 "Risking Everything" 같은 시선집에도 실린 시들이 대체로 그런 시들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요.
그래서, 지금, 최영미 시인이 특히 사랑하는 시 중 하나로 "찻집"을 읽게 되니 좋으네요.

그리고 "선물"을, 그저 떠오르는 대로 옮겨보면……

 

 

선물 / Czeslaw Milosz

 


참 행복한 하루.
안개가 일찍 걷히고, 나는 뜰에 나가서 일했다.
벌새들이 인동덩굴꽃 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세상에 내가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부러워할 만한 사람을 아무도 몰랐다.
어떤 나쁜 일을 겪었든 다 잊었다.
한때의 나 그 모양이었던 생각이 당혹스럽지 않았다.
몸에 아픈 데가 없었다.
허리를 폈을 때 나는 푸른 바다와 돛배들을 보았다.

 

 

 

음악이나 그림이나 시(詩)나

마음을 통해 들리고, 보이고, 느껴지고 하는 것인지

'아마도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은 내 나이쯤이겠구나' 싶어서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나의 모든 일들이 다 그런 상태인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루'님께서 이 시를 번역하여 보여주신 것은

내게 참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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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연변이 같은 부정비리 행위를 막겠다고 정상적인 생활도 규제하니까 그런 게 쌓이고 쌓여 이제 돈만 아는, 권력만 좇는 이상한 세상, 삭막하기 짝이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이쪽으로 막고 저쪽으로 막고 막는 일에 힘써기보다는 근원적인 문제, 선물 같으면 좋은 선물, 정성이 깃든 선물에 대한 강의, 지도, 실천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필요하고, 그런 일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지 어디 다른 곳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학교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교장을 할 때 '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펼쳐볼 걸... 후회가 막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