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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사막의 소년 병사」

by 답설재 2016. 4. 14.

사막의 소년 병사

 

 

백 무 산

 

 

모래 먼지 덮인 흙구덩이는

핏물을 빨아들일 수 없을 만큼 메말랐다

 

신을 짓밟은 원수의 머리가 두건 속에서 떨어지고

용암처럼 총구에서 울컥울컥 토해내는 빛

 

구덩이를 묻고 총을 메고

열 살 남짓 소년 병사들 담배를 물고

흘끗흘끗 뒤돌아보며 돌아갔다

팔을 치켜들더니 무너진 건물 뒤로 사라졌다

 

그 소년들 훗날,

평화가 오고 성인이 되고 그리고

세상은 시시콜콜해지고 삶은 혼란스럽고

민주주의는 질척질척하고 가진 자들은 야비하고

권력은 추악하고

 

칼로 도려내고 싶었던 그 기억

피를 얼리던 그 기억

안간힘을 다해 지워버리려고 했던

그 전쟁,

그 참혹한 전쟁이 갑자기

갑자기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피를 끓이게 할지도 모른다

 

 

 

―――――――――――――――――――――――――――――――――――――――

백무산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 등단.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初心』『거대한 일상』『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그 모든 가장자리』『폐허를 인양하다』 등. 

 

 

 

출처 : 뉴시스(2016.3.14)

 

 

 

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그곳의 일들에 대해서는 이젠 어느 쪽이 우리 편에 가까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고,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뉴스를 보고 있을 때, 총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며 텔레비전 화면을 스쳐간 그 병사들 이야기일 것이다.

 

무언가를 외치던 그 먼 나라 병사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사막이 갑자기 우리에게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더러 그 전쟁의 책임을 지라고 할 리도 없는데도 마음이 편칠 않다.

 

詩란 참 묘한 것이 아닌가.

 

 

 

☞ 『現代文學』 2016년 3월호 174~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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