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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강성은 「그들의 식사」

by 답설재 2016. 4. 19.

그들의 식사

 

 

강 성 은

 

 

우리는 조용히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릇들이 각기 다 달랐다 아고타는 숟가락을 든 채 창밖의 봄을 바라보고 있다 푸르게 변해가는 화단을 바라보고 있다 공습경보가 울렸다 엄마는 불안한 눈으로 커피잔을 양손으로 쥔다 북서풍이 사납게 집 안으로 몰아쳐왔다 테이블 위에 있던 우유가 엎질러졌다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낡은 양탄자에 얼룩이 졌다 깜짝 놀란 아고타의 안경이 떨어져 깨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안느가 문 앞에 떨어져 있는 엽서를 주워온다 안느가 깨진 유리조각들을 밟고 걸어와 다시 식탁에 앉는다 엽서를 읽는다 잘 있느냐 잘 있거라 식탁 아래 붉은 핏방울들이 조금씩 커져갔다 죽은 잎들이 창턱까지 쌓여 있다 흰 눈이 내렸다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한다 의자의 높이가 각기 다 달랐다 아고타가 떨어진 안경을 주워 다시 낀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안느가 먹다 남긴 국그릇을 들어 아고타가 마신다 엄마는 불안한 눈으로 계속 커피를 마신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굵은 빗방울과 함께 번개가 쳤다 순식간의 정전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한다 누군가 창문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그들의 식사를 바라본다 기억해? 이곳에 아름다운 집이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집이 있었는데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현대문학』 2016년 3월호에서 재인용)

 

 

 

평론가 장은정의 글(「지켜내는 반복―2010년대 시를 향한 하나의 각도」)은 전문적인 것이었지만, 무슨 단서를 찾듯이 샅샅이 읽고 더러 밑줄을 그어두었습니다.

 

* 보통 문학사에서 젊은 시인들은 자신의 위치를 자발적으로 약자에 놓아왔다. 실제로 사회 속에서 약자의 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이긷기도 하고 현실 속에서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시라는 장르에서 대리하여 수행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265)

* 강성은(……)의 시는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 이후 삶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 강성은의 시는 사랑하는 이가 상실되기 이전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파고들며 모든 종류의 끔찍함을 감당해내며, (……) (276)

* 우리는 그 볼품없는 디테일들을 사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랑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277)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이야기에 살이 붙는 것 같고,

마침내 작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신문기사 혹은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 '오래된 집'에 대한 기억이 다시 현실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더 읽으면 아고타네가 어떤 형상으로 그려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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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은정「지켜내는 반복-2010년대 시를 향한 하나의 각도」(『현대문학』기획평론 제4회, 2016년 3월호 256~27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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