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정은미 「모드와 링거」

by 답설재 2016. 6. 1.

체로키 인디언 할아버지에게 듣는 인디언 이야기 중에서

모드와 링거

 

 

정은미

 

 

'모드'라는 개가 있어.

냄새는 잘 맡지 못하지만

귀가 밝아 먼 소리까지 잘 듣지.

 

'링거'는 뛰어난 사냥개였어.

지금은 나이 들어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나는 사냥할 때

모드와 링거를 꼭 데리고 다녀.

 

냄새도 못 맡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개들을

왜 데리고 다니냐고?

 

그건 여전히

자신들이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지.

 

내가 산에 오를 때면

녀석들은

'컹! 컹!' 짖으며

앞질러 힘차게 뛰어간단다.

 

 

 

                                                                                2013.5.25. 충청북도

 

 

 

그러니까 이 이야기와는 직접적 관련이 전혀 없는 엉뚱한 개.

나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인사를 하면 가까이 다가가 그렇게 인사를 받는 것에 대해 꼭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아, 제가 잘 보이지 않아서요. ㅠㅠ……"

 

게다가 잘 듣지도 못합니다.

소리는 들리는데 그게, 그 의미가 '얼른 얼른' 다가오지를 않습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하고 물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던 아내가 좋아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웬만하면 참고 넘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별수없는 노인이 되어가는구나…….'

 

그렇지만 나도 아직은 좀 나서고 싶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 시 좀 읽어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동시'랍니다.

동시도 이런 시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 좋겠고,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시 같지도 않은, 또 하룻저녁에 백 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은 그 '말놀이'는 집어치우고,

이런, 말하자면 삶에 관한 이야기 좀 쓰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동시문학》 49호(2016년 봄·여름)에 실린, '제15회 오늘의 동시문학상 수상작입니다.

 

 

moon향님의 안내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1를 읽고 모드와 링거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한 가지만 옮겨놓게 되었다.(2017.4.4.)

 

할아버지가 개를 기르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옥수수밭 때문이었다. 봄, 여름이 되면 할아버지는 모드와 링거에게 사슴이나 너구리, 산돼지, 까마귀 같은 짐승들이 옥수수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보는 일을 맡겼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모드도 사람인 자신처럼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기 때문에 여우사냥에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청력과 시력은 아주 날카로워서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그런 일을 맡기면 아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개든 사람이든 간에 자기가 아무 데도 쓸모없다고 느끼는 건 대단히 좋지 않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링거는 예전에는 뛰어난 사냥개였지만 지금은 너무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꼬리를 질질 끌고 다녀 볼꼴 사나운데다 옛날만큼 잘 보거나 듣지도 못했다. 할아버지가 링거를 모드와 짝지어 준 것은, 링거가 모드를 도울 수 있게 하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일은 링거에게 뿌듯한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특히 옥수수밭에서 일하는 계절이 되면 링거는 목을 한껏 치켜세운 채 네 다리를 씩씩하게 내딛으면서 주위를 돌아다니곤 했다.

 

옥수수가 자라는 계절이 되면 할어버지는 모드와 링거를 계곡에 있는 헛간에 데려다 놓았다. 헛간이 옥수수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마리 개는 충성스럽도록 열심히 옥수수밭을 지켰다. 모드가 링거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모드는 옥수수밭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이면 밭 임자는 자기라는 듯이 컹컹거리며 달려가 그놈들을 쫓아냈다. 그러면 링거도 모드를 똑같이 따라 했다.

이렇게 옥수수밭 사이를 달려갈 때, 냄새를 맡지 못하는 모드는 너구리 따위를 못 보고 지나치고 마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하지만 모드 뒤를 따라 달리는 링거는 그렇지 않았다. 눈과 귀가 좋지 않은 링거는 땅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가면서 너구리를 쫓아가다가 결국에는 나무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고 나면 링거는 축 처진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링거와 모드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둘은 모든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개를 기르는 또 다른 이유는 여우몰이를 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46~47)2

 

 

 

..........................................................

1. 프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16(5판7쇄).
2. 링거의 죽음 : 이 책 144쪽.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소리」&「상속자」  (0) 2016.07.31
조용미 「봄, 양화소록」  (0) 2016.07.21
「소지燒紙를 태우며」  (0) 2016.05.10
강성은 「그들의 식사」  (0) 2016.04.19
백무산 「사막의 소년 병사」  (0) 201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