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다시 직장을 구하거나 돈을 한 번 더 벌어보거나 다시 사람을 만나거나... 무엇을 새로 시작하거나 할 기회나 에너지가 소멸된다는 것이겠지? 그런 사람에게 뭘 달라고,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염치가 없고 도리가 아니고 예의가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전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포기하거나 하는 사람은 게으르다느니 어떻다느니, 의례적인 헛소리를 하는 인간과는 일단 대화를 거부하고 싶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본 장면이다.
# 1
나를 바라보는 모리츠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너를 보내고 싶지 않구나, 스밀라."
모든 인생은 정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모리츠는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모리츠를 짓누르고 있는 갈등은 그가 30대이던 시절, 우리가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나의 아버지가 되었던 때에 가졌던 갈등과 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행한 단 하나의 일은 그런 갈등에 맞설 능력을 덜어버린 것이었다.(340)
이누이트족 어머니와 네덜란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가 그의 아버지 모리츠와 만나는 장면이다. 스밀라는 지금까지 그의 아버지에게 필요한 일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돈을 요구하기만 하고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 늘 무엇을 맡겨놓은 것처럼 도도하게 대했다. 젊은 날의 모리츠는 그런 상태에서도 힘을 가졌지만 지금 모리츠는 처량할 뿐이다.
# 2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이제 정직한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나쁜 꿈을 꾸지는 마세요."
나는 말했다.
"나는 후회하기에는 이제 너무 나이가 많아요."(178)
위의 스밀라가 자신을 도와주는 늙은 여성에게 호의를 가지고 부탁한 다음 헤어지는 장면이다.
늙은이에게는 다시 시작할 에너지가 없다. 그러므로 후회할 것도 없는 늙은이는 행복하다.
다시 직장을 구하거나 돈을 한 번 더 벌어보거나 다시 사람을 만나거나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거나 할 기회나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게 이제 와서 무엇을 요구하는 건 가혹한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썼다.
# 3
우리의 일생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우리는 자신의 성숙함을 신뢰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갖가지 재난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재난으로 인해서 우리의 추론 능력이며 용기며 재간 같은 능력조차도 지금 벌어지는 드라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치 어린이 같은 무력한 상태로 되돌아가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젊은이가 이러한 늙은이에게 대들거나 까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늙은이는 세상 인간들과 다른 별종의 부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의를 갖기 싫으면? 그럼 그냥 두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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