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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

by 답설재 2023. 7. 15.

 

 

 

어느 학자가 자문 한 건으로 이십 억 원 가까이 받았더라는 뉴스를 봤다. 신고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유능한 경우, 고위 공직 임명 문제만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교수도 교수 나름이어서 거기에 비하면 '껌값' 정도를 더 벌려고 발버둥 치는 경우도 있을 것 같고, 이 사례처럼 '어마어마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허구한 그날들, 훈장을 주겠다고 해도 그걸 받는 데 필요한 공적조서 쓸 시간조차 없었던 내게는(그 제안을 한 상급자 L 씨는 내 대답을 듣고 한마디로 "에이~" 했지만 내심 좋아했을 것이다. 장관(혹은 차관)에게는 본인이 싫다고 하더라고 하면 그만이고 흔쾌히 받고 고마워할 사람은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흔히 야간에 대학원을 나가 학위를 받는 사례를 보면서도 공부는커녕 대학원 입학원서 쓸 시간을 내는 것조차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수, 박사들이 그렇게도 많은 세상에 태어나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썼다(《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제도는 단지 입회만으로도 개인에게 영구적인 지위─굳이 해마다 거듭해서 혼자 힘으로 얻어내야 할 필요가 없는─를 부여할 수 있다는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 어떤 조직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한 외로운 사상가라면 뒤늦게야─생애의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쯤 또는 니체의 경우처럼 죽은 지 한참 뒤에야─비로소 훌륭한 사상가로 대중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조직에 속해 있으면, 저명한 선배에 의해서 확립되고 우아한 건물이며 원활한 관료적 절차에 의해서 강화되는 명성에 개인도 자연스럽게 편승할 수 있다. 그들은 사제나 부주교, 교수나 목사와 같은 유서 깊은 호칭을 이용하는가 하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기보다 더 크고 더 영속적인 구조 속에 쌓여 있는 자원과 영예를 이용할 수도 있다.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은 제도의 힘 혹은 유서 깊은 호칭 같은 걸 이용하지 못해서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썼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일 것이고,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사람들은 어느 쪽으로 붙고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온 것이 씁쓸하고 쓸쓸한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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