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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수학의 기초, 숫자 체계

by 답설재 2023. 7. 18.

 

 

어떤 소설가들은 작품 줄거리 속에 자신의 견해를 슬쩍 집어넣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견해를 집어넣지 않아도 이야기 전개에 지장이 없을 듯한 '삽화'라고 할 수 있다.

'입담'이 좋은 걸 보여주려는 경우도 많지만, 평소 생각하던 것을 적당한 곳에 집어넣은 경우 아주 값진 것이어서 '야, 이것 봐!' 싶은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이 발견될 때마다 '또...' 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집어넣은 표가 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이건 너무 작위적이잖아!' 싶기 일쑤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그런 걸 따로 모아서 산문집을 한 권 내든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늘은 원고량을 늘이기 위해 쓸데없는 이야기를 오래 한 걸 발견하고 아예 그 소설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패터 회)에 들어 있는 이런 이야기는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얼마쯤 작위적이지만 내 관점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하기도 그렇고 '수학의 기초? 숫자 체계? 뭔가 있는 것 같잖아' 싶어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옮겨놓았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참 난감하게 가르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고, 이런 얘기는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수학의 기초가 뭔지 알아요?" 나는 물었다. "수학의 기초는 숫자예요.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숫자라고 말할 거예요. 눈과 얼음의 숫자, 왜인지 알아요?"

수리공은 호두까기 도구로 집게발을 깨서는 구부러진 집게로 살을 빼냈다.

"숫자 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 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

수리공은 수프에다가 크림을 얹고 오렌지 주스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 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 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이성을 넘어서고 싶어 하죠. 인간 의식은 제곱근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연산을 더하게 돼요. 그럼 무리수가 되는 거예요."

수리공은 프렌치 식빵을 오븐에 데우고 후추 빻는 기구를 채웠다.

"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예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 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

나는 좀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동족 인간에게 나 자신을 설명할 기회는 갖는 건 드문 일이다. 보통 우리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건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절대 멈추지 않죠. 왜냐하면 지금도, 바로 즉석에서 우리는 실수에 음수의 상상의 제곱근을 더해 확장하니까요. 이 허수는 우리가 그려볼 수도 없는 수, 보통 인간 의식이 이해할 수 없는 수예요. 그래서 이런 허수를 실수에 더할 때, 복소수 체계를 갖는 거죠. 얼음이 결정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첫 번째 숫자 체계예요. 이 체계는 광활하고 열린 풍경과 같아요. 지평선이죠. 우리는 그쪽을 향해 가지만 지평선은 끊임없이 물러서요. 거기가 그린란드예요. 내가 그 없이는 살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나는 갇히고 싶지 않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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