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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다행! 내 이명(耳鳴)

by 답설재 2013. 8. 26.

 

 

이명(耳鳴)이란 귀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아주 쉬운 낱말이지만 경험이 없을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뭐 그런 게 있나?' 할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그렇다고 내가 뭐 '특별한 사람'이란 뜻은 아니지만―― 그 이명이 예를 들어 귀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라든가, 병이 나서 몸이 허약해졌을 때라든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특별한 때'에는 혹 들릴 가능성이 있지만, 나와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특별한 때'에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언제나, 늘, 그러니까 평생 그 소리가 들리고, '보통사람들'과 정반대로 '아주 특별할 때' 그러니까 너무나 즐거울 때라든가, 왁자지껄 정신없이 떠들며 노는 짧은 한순간에는 혹 그 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지냅니다. 그렇다고 그 소리가 멈추는 것은 아니고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내 이명은 "찌잉 찌잉 찌잉……" 혹은 "찌이이이 찌이이이……" 끝없이 들려오는 기계음 같기도 하고, 더 잘 들어보면 "쌔롬 쌔롬 쌔롬……" 끝없이 들려오는 한여름 매미 울음소리 같기도 합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나를 앞에 앉혀놓고 굳이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할 수 없이 매미 울음소리에 더 가깝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래 봤자 그 의사가 이 이명을 고쳐줄 것 같지는 않지만…… 고쳐 주지도 못하겠지만…….

 

그렇게 대답하겠다는 건, 기계음과 함께 산다면 아무래도 좀 희한한 인간으로 비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 귀에서는 사시사철 '찌이잉――' 하고 기계음이 들립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보다는 "내 귀에서는 사시사철 '쌔롬, 쌔롬, 쌔롬…………' 하고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면 우선 '희한한 인간'이라는 말은 듣지 않을 것 같고, 어떤 사람은 기계음이 들린다는 대답을 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더 낭만적으로 해석해 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이것도 '질환'이라면 이 질환을 갖게 된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는 없었다는 체념 비슷한 걸 느끼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직 이명 같은 걸 의식하지 않아도 좋았을 때――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부근의 고가도로 위에서 차가 밀려 서 있을 때, 창 너머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옆에 앉은 누군가에게 "저 아파트 사람들은 대도시에 살면서도 저렇게 악착스레 울어대는 매미 때문에 오히려 성가시지 않을까요?" 한 적이 있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나는 이제 '사시사철', '밤낮없이', 그러니까 한여름은 고사하고 한겨울에도, 온 천지가 얼어붙은 그 겨울밤에도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으니, 죽고 살 만큼 큰일은 아니라 해도, 운명도 참 기가 막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면 어떻겠습니까? 미칠 것 같겠습니까? 아니면, 시골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매미 우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경우에는 그런 대로 견딜 만하겠습니까?

 

처음에는 '이거 이렇게 해서 살겠나?' 싶었습니다. 허구한 날 매미 울음소리를 듣게 되다니……

그러다가 독감이 걸렸을 때던가 어느 한의원에 갔을 때 혹 진단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이 사실부터 고백했더니, 그 한의사가 대뜸 그건 무슨 대수는 아니라는 듯, 혹은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는 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평생 그냥 친구처럼 지내세요."

 

이명이란, 경험을 해석하기로는, 힘에 부치는 생활을 하면, 즉 기력에 비해 어려운 일, 복잡한 일 같은 것에 장기간 시달리면 이렇게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고무줄이나 용수철을 쓸 때 어느 정도까지 늘이면 그 탄력이 힘을 감당해 줄 수 있지만, 너무 힘껏 당기게 되면 그만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형편없이 축 늘어지고 마는 경우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 왜 팬티를 오래 입으면 고무줄이 늘어나서 입기 거북해지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팬티는 고무줄이 늘어나 사람으로 치면 이명이 들릴 상태입니다."

 

 

 

 

이 이명을 어떻게 해서 좀 고쳐 보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무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기(氣)가 부족해서 그렇다느니 영양이 부족해서 그렇다느니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요법을 쓰거나 보약을 지어 먹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나처럼 이명을 갖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좀 듣고 싶습니다. 그것도 그분의 경우에는 그 이명이 매미 울음소리 같은 것인지, 아니면 무슨 다른 벌레 우는 소리 같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서귀포나 어디의 파도 소리 같은 것인지, 그 이명의 형태에 대해서만 들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호기심을 갖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말하자면 이명 따위로 어느 누구하고도 장시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건 쓸데없는 논의가 될 것이 분명해서 그저 이것만 파악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이명은 어떤 소리입니까?"

 

 

 

 

만약 이 이명이 내가 참 좋아하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로 들리면 어떨까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그만두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곧잘 우울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령 이 이명이 나에게 다정하거나 호의적일 때의 내 아내의 대답처럼 들리면 좋겠습니까? 얼핏 생각하면 "좋겠네!" 하겠지만, 정말 그럴 때의 내 아내의 음성이 사시사철, 밤낮없이 이렇게 들리게 되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 종일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는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이 기계음 혹은 매미 울음소리가 처음에는 아주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대안(代案)을 생각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파도 소리는 어떨까?'

'비 내리는 소리는 어떨까?'

'쏴아, 바람 소리는?'

'한여름밤 소름끼치는 공포물에서 여우로 변하기도 하는 여인의 괴성(귀성)은 어떨까? 텔레비전을 볼 때의 그 소리를 나는 아내와 아주 정반대로 참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늘 정신이 번쩍번쩍 들지 않을까?'

'그럴 것 없이 한때 수없이 들어서 좀 외우기도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어떨까?'

'그건 너무 무겁겠지?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 알면 웃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월츠"나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에서 "유월"쯤은 어떨까?'

'아니지, 그런 소품보다는 아무래도 교향곡 5번 "운명" 제1악장 정도가 낫겠지?'

'짧은 인생을 보다 길게 살려면 시계 소리를 듣는 게 좋지 않을까? 똑 딱 똑 딱……'

 

 

 

 

하여간 나는 내 이명의 대안에 대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이명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소리 중에서 내가 생각해내고 검토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자부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래도 기계음, 이 매미 소리가 가장 좋겠구나!'

'만약 다른 소리가 이처럼 사시사철, 하루 종일, 쉬임 없이 들린다면, 끔찍하겠지? 마침내 나는 아무 일도 못하고 앉아 귀를 기울이거나 아예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할 것이 뻔하겠지. 내 인생은 그걸로 끝장이겠지.'

 

아, 그렇다면 내 이명은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것인가!

"찌잉 찌잉 찌잉…… 찌이이이 찌이이이…… 쌔롬 쌔롬 쌔롬…………………………………………

 

 

 

              이 블로그에서 이명에 대한 다른 글 보기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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