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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렇게 더워요?

by 답설재 2013. 8. 14.

 

 

 

남양주시청에서 발간하는 『쾌한도시』 8월호 표지 뒷면입니다.

전철을 타고 오며 펼쳤습니다.

 

철썩 철썩 파도소리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빠, 엄마와 함께 쌓던 모래성,

혹시라도 파도에 쓸려 내려갈까

조심조심 토닥이며 한 단, 한 단 모래를 쌓으면

아슬아슬한 나만의 성이 맞이해 준다.

 

이 글과 그림을 보며

아무것도 없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나의 여름방학들을 생각했습니다.

 

'모래성'은 무슨……

'아빠, 엄마'는 무슨……

 

나는 방학만 되면, 방학숙제를 했다 하면, 커다란 수박과 넓고푸른 바다를 그렸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 위의 저런 그림과 글들이 주는 막연한 '기대'를 생각하고 그리워했습니다.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겠지

이번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그렇게 여섯 번의 여름방학과 여섯 번의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보냈습니다.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겠지

이번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그 막연한 기대는 그 후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2013년 올해의 여름이 된 것입니다.

 

올여름 더위는 지독하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서울이 동남아 도시보다 오히려 더 덥다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지난 주 수요일 그러니까 7일이 입추(入秋)였는데 "가을은 무슨……" 더위가 물러갈 기미가 없다고 이젠 옛 조상들의 슬기로움이 배어 있는 절기(節氣)조차 전혀 맞지 않는다고 투덜댑니다.

 

아 무심한……

왜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뭘 보고 맞지 않는다고 합니까?

냉장고 속에 들어간 듯 해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조석(朝夕)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에 이미 가을이 묻어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맹렬한 듯하지만 쓸쓸함이 스민 것 같던데……

그러지 말고 조금만 단 며칠만 기다리면 그런 생각한 것이 쑥스러울 텐데 그땐 뭐라고 하려는 것인지……

아직 젊다고 가소롭다고 여기지만 그렇게 여기지 않는, 이 여름조차 조금만 더 머물다 갔으면 싶은 이들도 있는데……

자기네는 여름방학 겨울방학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듯한 '우리에게는 영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걸 모르겠다는 듯한 무심한 그 표정이라니……

 

 

 

교육부 위탁으로 한국교육개발원이 개발한 초등학교 1학년 방학 기간의

<탐구생활>(1989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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