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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절전은 그만하고 에어컨 켜라

by 답설재 2013. 8. 20.

 

 

 

지난해 여름에는 강남대로의 어떤 가게들 앞을 지나가면 한여름인데도 서늘했습니다. 온 세상을 서늘하게 하겠다는 듯 문을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블랙아웃'이 되면 큰일이라는, 예비전력이 아슬아슬한 수준이라는 뉴스가 연일 눈에 띄는 나날이었습니다.

 

“절전은 그만하고 에어컨을 켜라.”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여름철마다 대대적인 절전 운동을 벌여 온 일본에서는, 우리와 정반대로 이와 같은 ‘희한한 조언’이 나오고 있답니다. 더위에 고통 받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그렇게 절전을 하는 그 일본이 부러웠습니다.

 

그 기사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1일 ‘열사병 예방… 과도한 절전 말고 냉방 활용을’ 제하의 사설에서 “절전을 하겠다고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고 더위를 참는 것은 금물이다. (에어컨을) 잘 활용하고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야간에는 전력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절전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절전을 촉구해 온 정부에서도 “무리가 없는 범위 내에서 절전에 참여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7월 들어 전국 각지에서 최고 39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잇따르면서 열사병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절전 캠페인을 무리하게 전개하다가 폭염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10일 오후 8시 기준 전국 각지에서 열사병 등으로 입원한 환자는 최소 1228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11명이 의식불명 상태다. 70·80대 노인 등 고령자 3명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일본 소방청은 7월 1∼7일 1주일간 응급실로 후송된 환자가 2594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후략)…

 

 

 

"전력대란 주범은 원전비리 … 발본색원하겠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인터뷰 기사 제목입니다.** 일본의 저 모습을 생각하고 이런 기사를 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힙니다.

 

다행스럽다면 그나마 그 인터뷰 기사의 작은 제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보였습니다.

 

'올해 가까스로 블랙아웃 막았지만 원전가동 원활치 않을 땐 또 대란'

'피크 땐 비싸게 심야시간엔 싸게'

'원가미달 전기료 현실화도 추진'

'LNG 등 환경·경제·안전성 따져 에너지원 비율 적절하게 나눌 것'

 

 

 

그러나 멋진 기사도 있습니다. 이젠 우리의 수준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오늘 '경계' 예보… 예비전력 156만 KW까지 '뚝' 아슬아슬」이라는 큰 기사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였습니다.***

 

‘사려깊은 시민’… 어제 707만㎾ 절감했다
                   <약 230만 가구 사용 전력>

공공기관 냉방기 가동 중단… 산업체는 조업 일정 조정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됐던 12일 하루 동안 대한민국은 약 230만 가구가 사용할 전력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을 비롯한 산업계와 각 가정 등 전 국민이 절전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첫 고비를 넘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2일 전력수급위기 상황에서 전 국민의 노력으로 약 707만㎾의 전력을 절감했다. 700만㎾는 전력피크시기에 약 23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전력당국은 당초 12일 최대전력을 8050만㎾로 예상하면서 예비전력이 -306만㎾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날 실제 최대전력 수요는 7330만㎾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이날 전력수급위기 경보는 예비전력이 100만∼200만㎾ 수준인 ‘경계’로 예보됐지만 실제로는 예비전력이 400만∼500만㎾ 수준인 ‘준비’ 단계에 그쳤다.
    …(후략)…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기사에는 특히 공공기관의 선제적 대응이 큰 효과를 거두었고, 산업체에서도 절전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내용이 보였습니다. 에어컨을 두고도 켜지 못한 공무원들, 회사원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갑자기 정전이 되면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할 것은 뻔하지만, 우선 병원에서 전기의 힘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환자들은 당장 어떻게 했겠습니까.

 

 

 

일본 국민들은 정부에서 하라고 하는 일은 순순히 따르고 협력하는 데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정해진 일은 일단 준수한다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도 이러한 특징에 대하여 관료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령 독도 문제에 대하여 일본 국민들 중에는 '다케시마'가 아니라 "그건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에서, 총리대신이 "지금부터 교과서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로 표시한다"고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본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따르는 국민들이니까……

 

어느 변호사가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일본은 헌법소원이 거의 없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훈령이나 행정조치는커녕 행정지도만으로도 얼마든지 일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규에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무슨 그따위 법이 있느냐!'며 대어들고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하는 나라입니다."

 

 

 

나로서는 정부에서 절전을 하라고 하니까 순순히 따르며 열사병이 걸려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 일본보다는 이것저것 잘 따지다가도 일단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면 '해 주는' 우리 국민의 힘이 더 "쎄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습니다. 애어른도 없이 담배를 꼬나물고 쳐다봐서 그 애들 앞을 지나가기가 난처할 때도 있지만 '금연거리'에서는 금연하는 국민 아닙니까? 다른 사람 얘기도 아니고 바로 나의 경우이기도 하지만, 버스나 기차 안에서, 사무실에서, 심지어 안방에서조차 담배를 피워댄 것이 불과 몇 년 전 아닙니까?

그런 것도 다 하는 국민인데 하려고만 하면 까짓거 뭔들 못하겠습니까?

 

한다면 하는 나라, 일본도 그런 나라지만, 우리도 그런 나라입니다. 다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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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2013.7.11, 15면,[열사병 사망자 속출 日 “절전 말고 에어컨 켜라”](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

** 문화일보, 2013.8.16, 29~30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파워인터뷰.

*** 문화일보, 2013.8.1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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