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64 "할아버진 좋겠어요, 게임도 맘대로 할 수 있고…" 며칠 전 비오는 날 오후, 저 녀석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대체로 집에서 만나다가 모처럼 사무실에 있는 나를 보고 신기해했고, 이것저것 묻는 것도 많아서 한참 대답했습니다. 녀석이 다섯 살 때였던가, 내 대신 잠깐만 교장을 좀 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럼 그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학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오니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어려운 걸 물으면 어떻게 하죠?"("내가 옆에서 작은소리로 다 가르쳐 줄게.") "작다고 깔보는 선생님들도 있을 텐데……"("작아도 아주 똑똑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할게.") 그러나 녀석은 그 의자에 앉자마자 "도저히 안 되겠다"며 당장 일어섰기 때문에 '교장 대행'은 순간적인 해프닝이 되고 말았습니다. ♬ 녀석의 교장 대행 요청에 "그러라"고 한 것은.. 2013. 6. 10. '고추잠자리'(조용필)에 대하여 무대에서 내려서면 시지몽은 더이상 대수로울 게 없다. 두 시간 후엔 그가 밖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을 일러 인생은 하나의 꿈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지몽 뒤에 또다른 사람이 온다. …(중략)… 이렇게 수많은 세기들과 수많은 정신들을 휩쓸고 자신이 될 수 있는 혹은 자신이기도 한 사람을 흉내냄으로써, 배우는 그 다른 부조리한 인간인 나그네와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된다. 나그네와 마찬가지로, 그는 무엇인가를 소모시키면서 끊임없이 움직여 나아간다. 그는 시간 속의 나그네이며, 그것도 잘해봤자 영혼들에게 추적당하면서 쫓기는 나그네인 것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살하기보다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렇게 썼다.*배우는 덧.. 2013. 6. 7. 기분 풀고 가세요 - BEARD PAPA “기분 풀고 가세요.” BEARD PAPA ♬ 모처럼의 나들이였습니다. 편도로 겨우 두어 시간 운전에 이렇게 퍼지는 걸 보면 이런 나들이도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려가는 길의 마장휴게소에서 아내가 찾던 CD를 사주었습니다. 마땅한 음반 두 개를 샀는데 열어보니까 CD가 각각 두 장.. 2013. 6. 4. 나들이의 자유로움과 그 실체 나들이의 자유로움과 그 실체 ♬ 기차를 타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그 즐거움 때문에, 그 즐거움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려고 웬만하면 좋은 좌석의 비싼 표를 구입합니다. 게다가 그 즐거운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은 늘 많습니다. 경상북도교육청에서 교과서 심사를 할 교수, 교원들에게 그 .. 2013. 5. 24. '이뿐 척 급 금지!' "이뿐 척 급 금지" 경복궁역 4번 출구의 카페에서 본 팻말입니다. "이뿐 척 '급' 금지!" '얼마나 급했으면……' '꼴불견이었으면……' '지장이 많았으면……' 이뿐 것들이 무더기로 와서 '사업'에 지장을 주었을까요? 이대로 두면 큰일나겠다 싶었을까요? ^^ 그건 아니지요. 이뿐 척하는 걸 왜.. 2013. 5. 9.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아직도 짜증을 냅니다. 몸이 마음 같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주로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한심한 수준이면서 남들이 하는 꼴을 부드럽게 보아 넘기지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반성을 합니다.'내가 왜 이럴까?''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의 말씀을 찾아봤습니다.'예순이면 이순(耳順)이라는데…… 예순이 지난 지 옛날이고, 낼모레면 일흔인데……' ♣ 나는 열다섯에 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서고, 마흔에 不惑하고, 쉰에 天命을 알고, 예순에 耳順하고, 일흔에 하고싶은 바를 좇되 法度를 넘지 않았느니라. (孔子) 原文──爲政 四 子曰 『吾十有五에 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解義…(전략)… 孔子는.. 2013. 4. 24. 그리운 선중에게 그리운 선중에게 목이 아프다더니 지금은 괜찮아졌나? 선생님,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나는 너에 대한, 네가 힘들거나 속상했을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해질 때마다 그럴 때의 네 마음을 짐작하며 듣는다. 며칠 전에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고 너에게 이 편지를 .. 2013. 4. 16. ‘鐵(철)의 여인’ 떠나다 ‘鐵(철)의 여인’ 떠나다 조선일보, 2013.4.9, A1. 그는 작은 정부와 민영화, 규제 완화, 시장 개방 등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한' 혹은 '지중해 시대를 다시 열기 위한' 노력을 다한 나머지 '鐵의 여인'! 존경 어린 칭찬이기도 하고 한없는 원망이기도 한 또 하나의 이름을.. 2013. 4. 11. 어느 대학생의 인터뷰 어느 대학생의 인터뷰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뭘 외쳐 봐도 쳐다봐주는 이 없는, '그래, 또 벌면 되지' '다시 하면 되지'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살면 되지' 할 수도 없는, 마음도 몸도 시들어버린 이 블로그의 주인에 비해 이 봄에 새로 대학생이 된 이들은 "싱그럽다"는 단어 하나만으.. 2013. 4. 4. 「The End of the World」이 그리움... '강변'은 저 남녘의 화가입니다. 그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사진을 보여줍니다. 나는 날마다 그 '강변'에 가고 있습니다. 그가 덧붙이는 음악이나 詩보다는 사진들이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 사진에 어우러진 그 음악, 시가 사무쳐서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오기도 합니다. 저 사진에 붙여진 「The End of the World」는 꼭 46년 만에 듣는 노래입니다. 그간 더러 들었겠지만 '그 옛날 그는 그때 내게 왜 이 노래를 들려 주었을까?' 새삼스럽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때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한 해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학비가 별로 들지 않고 딱 2년만 공부하면 취직할 수 있다는 친구의 종용으로 그 대학 생활을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그 2년의 시간에 이루어질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2년만 흘러간 .. 2013. 3. 31. 잘 웃지 않는 이유 길에서 주운 행운을 의심하듯 올봄의 화창한 날씨를 불안해하던 이곳 사람들은 최근 며칠간 계속되는 흐린 날씨 아래서 오히려 안심한 표정이다. 한시적인 행복이 곧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는 계속되는 불행을 감수하는 편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가 아니고 무엇일까. ── 이화열 에세이, 「엘리스를 위하여」 (『현대문학』 2012년 7월호, 251쪽) 중에서. ♬ 나는 그 어떤 일에서든, 그것도 '여유'라고 할 수 있다면, 여유를 두는 편입니다. '이 약속이 깨질 수도 있다.' '답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 멀어질 수도 있다.' '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곧 우울해질 수 있다.' '돈이 없어서 난처해질 수도 있다.' '저 사람이 화를 낼 수.. 2013. 3. 28. 나는 어디에 있나? 이 그림은 신논현역에 있습니다. 한가로울 때는 그곳 서점에 갔다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 이 그림을 바라봅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도 같지 않아서 참으로 다양하구나 싶습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저 중에 나는 어디에 있나?' 아직까지도 정리되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 청문회장에 나가서 "이건 저렇고, 저건 이렇다"고 밝힐 만한 능력이나 재산, 힘 같은 것을 지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엇으로든 누굴 좀 도와줄 만한 너그러움을 지닌 것도 아니고, 단 한 권 책을 제대로 읽은 것도 아니고, 어디 교외에 그럴 듯한 토지나 집을 마련해 둔 것도 아니고…… 저 그림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나란 인간은 도대체 무얼 해서 완성되어야 하나……' 암담하다는 생각으로 돌아옵니다. 제일 쉬운 일 .. 2013. 3. 26. 이전 1 ··· 71 72 73 74 75 76 77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