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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58

임자 없는 실내화·우산·자전거… 아무나 타고 싶을 때 탈 수 있는 자전거!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 오후에라도 아직 코스모스 꽃밭이 남아 있을 구리한강시민공원에 나갔을 때, 그곳 강둑을 따라 한가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수십 수백 대의 자전거가 종류별로 비치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아무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물,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가령 논현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오른쪽 길로 걸어내려가다보면 그 중간의 딱 한 건물에서 "아무나 화장실을 이용해도 좋다"는 표지판이 붙은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나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책…… 세상에 돈은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인심으로야 많이 어려워져 있으므로 몇 가지만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생색을 내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마음 편.. 2010. 11. 17.
그녀가 결혼한 이유 그녀가 결혼한 이유 요즘은 KBS TV의 「가요무대」를 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보고 싶어도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프로그램은, 쳐다만봐다 가슴이 뻐근해지게 됐으니 지난번에 끝난 드라마 「이웃집 웬수」나 「가요무대」 같은 편안한 프로그램이 좋습니다. 어젯밤 「가요무대」는 '만추'라는 제목으로 가을 노래를 들려 주었고, 지난 8일 밤에는 설문조사로 광복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인기가 높았던 곡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광복 후 1940~1950년대에는 '꿈에 본 내 고향' '나 하나의 사랑' '단장의 미아리 고개' '만리포 사랑' '봄날은 간다'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곡이었고, 전체 1위곡으로는 '그때 그사람'이었는데 그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은 거.. 2010. 11. 16.
CLAUDIO ABBADO가 들려주는 모차르트 병석에 있으니까 별 게 다 그립습니다. 심지어 …… 심지어 …… 그 그리움이라는 걸 털어놓는 건 얼마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감상적이기도 한 일이기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로 병원에 가기 전, 그러니까 지난 봄부터 추석 무렵까지 집에서 사무실을 오가던 그 시간들, 올림픽도로 주변의 그 정경들도 다 그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사실은 얼마나 한가로웠고, 그 한가로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는지요. 그러면서 들은 음악 중의 한 가지가 CLAUDIO ABBADO의 모차르트입니다. 단호하게, 박진감 넘치게, 군대의 행렬처럼 나아가다가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바뀌어 가고, 그래서 가령 고등학교 입학식이나 대학생 입학 축하 파티를 하며 이 음반을.. 2010. 11. 10.
소규모 학교·소규모 학급 지난달 28일 오후에 후배 교장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교장은 참 다정한 사람이지만 내가 심장을 두 번이나 고친 줄은 모릅니다. 사실은 이 블로그에 오는 분 말고는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랑'을 하고 다닐 수도 없고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혹 심장 고쳤습니까?"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학교가 가까이 있고 아프다고 들어앉아 있기보다 한번 나가보자 싶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한 동행 학부모 연수'가 초대 이유였습니다. 그 학교가 작은 학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작은 학교인 줄은 몰랐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저 뒤에 계신 남성들은 누군가 싶어 학부모만 손 좀 들어보라고 했더니 앞쪽의 네 분인가 다섯 분의 여성만.. 2010. 11. 8.
외손자 선중이 Ⅷ -망신살 이야기- 지난 주에 학예회가 열렸답니다. 제 외손자는 무대를 내려오며 눈물을 쏟았답니다. 제 어미의 꽃다발도 받지 않았답니다. 모두들 컵 하나씩을 가지고 난타(亂打)를 했는데 옆의 아이가 건드려서 컵이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고, 그걸 주워든 제 외손자가 그 아이에게 무어라고 하고, 그러는 시간이 제 어미의 느낌으로는 10분은 되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 어미가 그 애에게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나 망신 좀 그만 시켜줘!" 그랬다고 하더랍니다. 마치고 교실로 돌아갔을 때 다른 아이들이 몰려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제 어미에게 전화해서 "지금 꽃다발을 받고 싶어요." 하더랍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물었더니 녀석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망신살이 뻗쳤죠." 웃기는 녀석이죠. 망신살이 .. 2010. 11. 3.
사지선다형(四肢選多型) 문항 Ⅱ 개그맨 한 명이 그룹 소녀시대 중 한 명의 소녀에게 능청스럽게 묻습니다. "소녀시대는 왜 인기가 높을까요?" "……(^^)" 인터뷰에 나선 그 소녀는 웃기만 합니다. '닭살'이지만 어떻게 나오는지 더 지켜보자는 거였겠죠. "그럼 다음 중 몇 번일까요? ①번 예쁘니까, ②번 예쁜데다가 노래도 잘 하니까, ③번 예쁜데다가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니까. 자, 몇 번일까요?" ④번은 없었습니다. "……(^^)" 소녀는 그래도 대답하지 않고 생글생글 미소만 짓고 있었고, 그 개그맨은 무어라고 이야기를 더 이어갔지만 나는 이미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지선다형은 이런 인터뷰에나 쓰이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이제 그런 공부는 그만 하면 좋겠습니다. 아니, 학교에서도 하되 그 인터뷰처럼 .. 2010. 11. 1.
사지선다형(四肢選多型) 문항 페루에서는 선거를 할 때 다음 중 어떤 일을 금지하겠습니까? ① 도박을 하면 안 된다. ② 술을 마시면 안 된다. ③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④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 지난 23일(토) 오후, 라디오 토크쇼에서 들은 문제입니다. 페루는 요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친한 나라입니다. 답이야 뻔하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일들이 이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이처럼 가볍기만 하고,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이라면 또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세상사나 학교에서 하는 공부나 사지선다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고, 사실은 사지선다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정말 바늘구멍만큼 사소한 영역일 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어쩌면 사지선다형은 자녀나 조카, 손자나 손녀의 .. 2010. 10. 26.
이름붙이기 이름붙이기 Ⅰ 어느 전철역에서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은 작은 전시회를 보고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입니다. 무제(無題)…… 이런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이 작품에 '무제'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해준 분의 따듯한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했고, 제가 담임했던 그 아이도 떠올렸습니다. 그도 이미 50대이니 오래 전입니다. 자주 싸우고 말썽을 피우는 그 아이의 도화지는, 무슨 심보였는지 물감을 덕지덕지 쳐발라서 온통 거무티티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마음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라고 하니까 펴놓았지만, 그림은 무슨 그림……' 기억으로는 그 아이의 가정환경은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각자가 그린 그림을 분단별로 칠판 앞에 세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그.. 2010. 10. 25.
눈물 시름시름 앓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은 올해는, 지난 봄부터 아파트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목소리 속에 자꾸 30여 년 전 제 맏딸이 깔깔거리며 무언가를 외치던 그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던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되던 괜찮던 그 때가 이렇게나 그립습니다. 두 번째의 수술대 위에서 흘린 눈물 속에는 자신의 한심함 때문에 참는데도 솟아오르던 그 눈물 속에는, 영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그 아이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고3병을 앓았습니다. 고3병은 고3 때만 앓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고3병을 앓았습니다. 올해로 39세인 그 아이는 지금도 그 병을 앓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육의 병.. 2010. 10. 14.
삶, 이 미로… 삶, 이 미로… 모처럼 하늘이 저렇게 푸릅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보던 그 하늘이구나 싶었습니다. 둘째 딸이 전화로 그러더랍니다. "아빠에게 전해줘요. 하늘이 저렇게 맑은데 죽어서 되겠는지." 때때로 가슴이 울렁거리고 몸이 어지러워지는 그 증상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해서 몸을 자.. 2010. 9. 27.
외손자 선중이 Ⅶ-수행평가 0점- 무슨 수행평가가 있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려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빵점을 맞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시간까지 어떻게 참았을까요. 제가 가지고 간 준비물은 뒤에 앉은 아이에게 빌려주고, 자신은 짝꿍의 것을 함께 썼는데, 선생님께서 누구의 것인지 묻고는 0점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녀석은 선생님께 왜 그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 녀석의 준비물을 쓴 그 뒤의 아이는 왜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을까?' - 옆의 아이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학부모의 입장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입장이 아닙니다. 녀석의 외조모와 어미가 그 문제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알게 됐으면 됐.. 2010. 9. 15.
외손자 선중이 Ⅵ 지난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녀석이 날씨가 무더운데도 제 산책길을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모두들 시장에 가고 둘이서 남아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나아가며 불안해하는 것 같았으나 ○○초등학교까지만 갔다가 돌아온다니까 그 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좀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초등학교’ 하면 어느 동네에서나 그리 불안해할 만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땀을 흘리며 돌아오는 길에 녀석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매일 이렇게 걸어야 해?” “그럼,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어. 그래 저녁 얻어먹고는 매일 저녁 이렇게 해.” 그러자 녀석이 다른 걸 가지고 대화를 잇습니다. “얻어먹기는 뭘 얻어먹어요!” “왜?” “할머니가 부인이잖아요.” “……” 뭐라고 하며.. 2010.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