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57

노인방치 VS 자녀와 놀기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꼬마야 꼬마야 손을 짚어라 ………… 오랫만에 봤습니다. 초등학교 중학년쯤인 남녀 아이들 대여섯 명이 노래를 부르며 긴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노는 걸 본 적이 별로 없어 그 모습이 신기하고 정겹기까지 했습니다. 요즘은 저녁이나 주말에 아버지가 자녀를 데리고 노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빠들은 "꼬마야 꼬마야"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주로 베드민턴이나 야구, 축구 같은 걸 합니다. 말하자면 매우 실용적이어서 흡사 체육 과외를 하는 것 같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눈치를 좀 보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TV CF에서는 예쁜 여성이 "요즘은 남자들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대요." 합니다. 신문에는 연일 아이들과 놀아줄 줄 아는 아빠에 대한 기사.. 2010. 8. 31.
외손자 선중이 Ⅴ-가슴아픈 사랑 제 가족들은 제가 외손자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운 걸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만큼 까다롭고 별난 성격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녀석에게 유별나게, 한없이 너그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한번도 용서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은 저의 가혹한 어린 시절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용서해주지 못한 제 지난날이 너무나 피곤하고 삭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이 들고부터는 누가 제 잘못이나 제 단점을 지적했을 때 한번도 뜸을 들이거나 잘 생각해보겠다며 제 반응을 유보해본 적이 없습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두고두고 혼자서 속을 끓이더라도,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저는 결코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당장 제 잘못만 들어 사과하지 않은 적이 .. 2010. 8. 30.
"그 나라엔 과외가 없어요" 비가 자주도 내립니다. 포리스트힐이라는 마을의 계단을,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손자를 앞세우고 할아버지가 뒤따라 올라가며 묻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려 학원 앞까지 우산을 가지고 갔겠지요. "그 나라에서도 이렇게 늦게까지 공부했니?" "아니오. 그곳엔 과외가 없어요." 손자가 대답했습니다. 그 뒤의 대화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 손자가 '과외가 없는 나라'에 가 살다가 '과외가 있는 나라' '과외를 하지 않으면 거의 견딜 수 없는 나라'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과외(課外)'가 왜 없겠습니까? 과외란 정규 수업 이외의 학습활동이라면, 글쎄요, 전 세계적으로 과외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런 나라는 차라리 너무나 형편 없는 나라여서 살기가 그리 좋지 않은 나라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2010. 8. 25.
저승사자와 함께 가는 길 Ⅰ 저승사자는 정말로 그림이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모습일까요?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쓰고, 이목구비가 특이하게 뚜렷이 보이도록 하얗게 화장한 모습. 어느 유명 인사가 생전에 저승사자의 그런 모습이 연상되는 화장을 자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왜 괴기스럽게 보이는 화장을 한 것일까요? Ⅱ 하기야 수많은 저승사자가 어마어마하게 용감해보이는 장군처럼 생겼다거나, 시쳇말로 '꽃미남'처럼 생겼다거나, 연약한 여성 차림이거나, 하다못해 우리처럼 이렇게 평범한 모습이라면, 누가 괴기스럽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순순히 따라나서겠습니까? 그런 모습의 저승사자라면 저승으로 가자고 할 때 일단 어리광 같은 걸 부려보거나, 떼를 써보거나, 구구한 사정을 늘어놓아 보거나, 도저히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기세.. 2010. 8. 23.
명예와 미련의 정체 서점에서 『동아시아 미학』 뒷부분을 살펴봤습니다. 놀랍습니다(리빙하이李炳海, 신정근 옮김, 『동아시아 미학』 동아시아, 2010, 521~2쪽). 명예의 시동(尸童)이 되지 마라. 모략의 창고가 되지 마라.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마라. 지혜의 주인공이 되지 마라. 무궁한 도를 완전히 터득하고 자취 없는 경지에 노닐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온전하게 하지, 스스로 얻은 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오직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을 뿐이다. 성인의 마음 씀씀이는 거울과 같다. 간다고 보내지도 않고 온다고 맞이하지도 않고, 오는 대로 그냥 호응하지 담아두지 않는다. 무위명시, 무위모부, 무위사임, 무위지주, 체진무궁, 이유무짐, 진기소수우천, 이무견득, 역허이이, 성인지용심약경, 부장불영, 응이부장. 無爲名尸,.. 2010. 8. 18.
불가사의(1) : 약 2300광년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아동도서를 소개할 때 다음과 같은 얘기도 썼습니다(2010.6.21). 부끄럽지만,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우주의 크기, 그 끝없음을 저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문에 몇 광년 떨어진 어떤 별 이야기나 그런 이야기가 실리면, 우선 1광년(光年)의 거리부터 좀 짐작해보다가 그 1광년에 막혀서 그만 포기하고 맙니다. 이 '포기'는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과학자들이 다 알아맞혀서 설명해주는 것조차 도무지 실감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뿐이겠습니까. 사실은 무엇 하나 분명히 인식하는 게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바보처럼 이렇게 지내다가 가는 거겠지요. 이 이야기의 자료가 되는 기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1 사.. 2010. 8. 9.
네티즌의 모습 세상은 한밤에도 복잡한 것 같습니다. 명동이나 어디나 하다못해 한강변에라도 나가보면 더 하겠지만, 한갓진 아파트의 한밤도 조용하기만 한 건 아니란 걸 이즈음에 알았습니다. 밤새워 싸우기도 하고, 늦게 아파트 현관을 들어오고 나가며 더 큰소리를 내기도 하고, 난데없이 애완견이 짖기도 하고, 변심이라도 한 듯 매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잠 안 오는 밤에도 뒤척이고 또 뒤척이면서도 침대에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물 한 잔 마시고 책을 읽으라는 걸 여러 군데서 여러 번 봤고, 머리맡에 책을 두고도 그렇게 하면서 밤을 새웁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 그런 식입니다. 당연히 제가 지면서도, 질게 뻔한데도 그렇게 합니다. 이제 굳이 잠을 자야 하거나, 굳이 책이라도 읽어야 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 2010. 8. 6.
이 얼굴 Ⅺ (윤수일) 2008년 4월 15일의 「하인스 워드를 위한 감사패」라는 제목의 시론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습니다. 하인스 워드 이후 하고 싶었던 말들이 줄을 이었고, 우리 사회가 그 분위기에 재빨리 적응해온 것은 다행스러웠다.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은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코 꾹꾹 누르며 울었다고 고백해서 우리를 미안하게 했다. 방송에 출연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외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또 시골로 시집온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나라가 별안간 다문화가정, 혼혈인의 천국이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가 됐다. 교육부에서는 당장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연구를 거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했고, 2007년에는 국가 교육과정에 다문화.. 2010. 8. 2.
이 얼굴 Ⅸ (인순이) 이 얼굴 Ⅸ (인순이) 한번 겪어보십시오. 언제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2008년 여름 어느 날, 영국에서 한 녀석이 날아왔습니다. 첫째 딸이 함께 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짐작하고 있었는데도 아내의 얼굴빛이 이상해졌습니다. 녀석은 현관에서 신발 벗는 것조차 서툴렀고, 그건 그 .. 2010. 7. 27.
창밖의 풍경 Ⅱ 지난 4월 16일에 쓴 「창밖의 풍경」이란 글의 뒷부분입니다. 지금은 이 풍경을 내다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가끔 저 창가에 비둘기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창가가 넓어서 비둘기가 머물다 가기에는 좋은 곳입니다. 비둘기가 환경을 어지럽힌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비둘기네 편입니다. 아니, 전에는 굳이 비둘기편도 아니고 인간들의 편도 아니었으나 최근에 비둘기편이 되었습니다. 이유? 언제는 평화의 상징이니 뭐니 해대다가 하루아침에 해로운 새라고 윽박지른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러는 인간들은 뭐가 그리 깨끗하답니까!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간사하고 그렇게 잘 변하는 걸 저 비둘기가 얼마.. 2010. 7. 26.
'아름다움'에 대한 오거의 주장 "'아름답다'고 하려면 상하(上下)·내외(內外)·대소(大小)·원근(遠近) 등의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초나라 영왕(靈王)이 장화대(章華臺)를 완성하고 그 웅장한 아름다움에 도취하자 오거(伍擧)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합니다(리빙하이(李炳海) 『동아시아 미학』 136). 독재(獨裁)는 박물관 유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지만, 오히려 지금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글을 읽을 때입니다. 오거가 저 말을 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영왕은 오거의 말을 경청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독재는 대통령·수상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일 것입니다. '정치(政治)'는 우리 생활 전체.. 2010. 7. 22.
이 얼굴 Ⅷ (행복한 순간의 배우 윤여정) 배우 윤여정이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은 소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능청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렇디고 내숭스럽다고 해도 그렇고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고급스럽고 참했습니다. "늙는다는 건 굉장히 불쾌한 일이에요.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개수작이라고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하고 똑같아. 안 되는 일이거든요." "배우가 마흔, 쉰 넘어갈 때 제일 힘들어요. 주연에서 조연으로 내려가니까 비참하고 힘들어요. 그걸 잘 견뎌내면 철학자가 되고 '난 주인공이야' 하고 버티면 딴따라가 되는 거예요. 인생도 페이드 아웃(fade out) 하잖아요. 이 나이에 '(전)도연이보다 잘할 수 있는데' 하면 흉하잖아. 노욕(老慾)이잖아." "85년에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제가 떠날 때 노바디(nobody)였던 후.. 2010.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