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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60

‘아, 아이들이다!’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졌습니다. 올림픽도로변에서 보고 다닙니다. 3월 10일 새벽, 그러니까 꼭 한 달 전만 해도 폭설이 내렸었습니다. 퇴직을 했고, 수술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회복 중이니까 그 날 아침, '두문불출'할까 하다가 잠깐 아파트 바로 앞에 나가며 그 정경들을 핸드폰에 담았습니다. 실제로는 기가 막힌 풍경들인데 이렇게 우중충하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저기 쳐다보며 천천히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보십시오! 정문 가까이에서 '요것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아파트 '어린이집' 아이들이 외출을 나갔다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는 걸까요? 저 뒤에 선생님이 따라오시는 걸 보면 잠깐 눈구경을 다녀오는 걸까요? 아이구, 이 귀여운 것들! 이제 학교를 못하게 된 저로서는, 이 아이들과 저.. 2010. 4. 9.
이 얼굴 Ⅰ(한주호 준위 ②) 저 표정들을 보라. 한 사람 한 사람……. 저처럼 다양한, 그러나 한결같이 비장한 표정들 속에 고 한주호 준위의 혼이 스며 있을 것이다. 2010년 4월 5일(월)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사진이다. 사진 아래에 「천안함 인양, 빠르면 10일 걸린다」라는 제목의 5단 기사가 있고, 우측에는 「공정택씨에게 돈 건넨 혐의, 전·현직 교육장 2명 소환」이라는 제목의 2단 기사도 보였다. 사진 설명은 다음과 같다. "영웅을 보내다… UDT 사나이들 눈물의 軍歌 : 3일 오전 성남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고 한주호 준위 영결식이 거행됐다. 고인의 UDT 동료들이 운구행렬을 막고 눈물을 흘리며 UDT 군가 '사나이 UDT가(歌)'를 부르고 있다" 운구행렬을 막고? 관련 기사를 찾아봤더니 「"한준위님, 저희 노래 왜 듣.. 2010. 4. 7.
이 얼굴 Ⅰ(한주호 준위) 천안함 수색 작업 중에 순직한 한주호(53) 준위가, 지난 2002년 8월, KBS TV의 UDT1 요원이 되기 위한 48기 훈련생도들의 훈련과정을 생생히 담아 보도한 수요기획 「지옥에서 살아오라!」라는 프로그램에서 훈련교관으로 등장한 모습이 오늘 오후 3시 7분에 에 실렸다. ​ 한 신문에는 관련 기사가 1, 2, 3면 가득 실렸는데, 특히 2면의 제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끝내는 눈시울을 적셨다.2 ​ 순직한 한 준위,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 "구조활동 힘들고 춥더라… 그래도 계속 하겠다" ​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2대째 군인의 길을 가고 있는 중위란다. 부인도 "지난 일요일 구조작업에 갈 때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제 두 번 전화했는데 '배에 들어왔다. 바쁘니까 내일 전화할게'라고 .. 2010. 3. 31.
영화『클래스』Ⅱ 다시 영화 『클래스』(교실) 이야기입니다. 먼저 신문 기사를 옮깁니다.1 ● '클래스'는 갈등·토론 불꽃 튀는 중학교 교실 1년 기록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클래스'는 프랑스 파리의 한 중학교 교실을 1년간 기록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다. 전부 신인 연기자인 교사와 아이들이 전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 실제 상황처럼 보인다. 프랑스어 교사 마랭(프랑수아 베고도)의 교실에 대부분 머물러 있는 카메라는 혈기방장한 중3 학생들과 성내지 않고 품위를 지키려는 선생 사이를 오간다. 가르치려는 자와 배우지 않으려는 자의 전쟁 같은 이 교실의 모습은, 누군가를 제도권 내에서 교육한다는 일이 얼마나 고되며 이성을 잃기 쉬운 일인지 가늠케 한다. 주인공 프랑수아 베고도는 원작 소설의 작가이며 전직 교사다. 영화에는 기.. 2010. 3. 30.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교실』 프랑스 영화 감독 로랑 캉테(49)가 오는 4월 1일, 『클래스』 국내 개봉을 앞두고 내한했습니다. 프랑스 영화로는 1987년 이후 21년 만에 칸 최고상을 받은 것이라니 감개무량할 것입니다. 그 영화가 2008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이미 2008년 6월초에 알려졌습니다. 그 때 저는 아래와 같은 자료를 작성해 놓았습니다. 교육에 관한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 특별하게 여겨져서 개봉되면 한번 보려니 했던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2008년에는 『교실』로 소개되더니 결국 『클래스』로 결정되었습니다. 『교실』을 버리고 결국은 『클래스』라니 …… 도대체……. 우리는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클래스』라고 해야 뭐가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겠지요. 제가 이 블로그.. 2010. 3. 29.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 우리를 지켜주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돈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에는 물건도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버스나 택시를 기다리는 승강장 구조물도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보면 그것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꾼다' '관리한다'고 생각하는 화분 중에서 그 규모가 작은 것들은 우리를 귀찮게 하고 괴롭히기 일쑤지만, 큰 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나를 지켜주는 두 화분입니다. 소나무나 참나무, 자작나무 같으면 더 좋겠지만, 내가 밤낮없이 그 나무들을 찾아갈 수도 없고, 그 나무들 중 몇 그루를 내가 사는 아파트 거실이나 사무실로 데리고 올 수도 없습니다. 대충 봐서 그 가지가 휘영청 늘어질 수 있는 화분이나, 물.. 2010. 3. 2.
설날 J 선생님의 전화 J 선생님이 새해 인사 전화를 한 건 차례를 마친 한적한 시간이었습니다. J 선생님은 참 좋은 분입니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고 함께 지낼 땐 좋은데, 헤어지기가 어려워서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지냈습니다. 물건이나 책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났을 땐 좋은데, 잃어버리거나 버려야 하거나 헤어질 땐 어렵습니다. 하물며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그것도 헤어지기 싫은데도 헤어져야 한다면……. 그럼에도 이 학교에 와서 또 좋은 사람들을 발견한 건 참 난처한 일입니다. J 선생님은 '설날이니까 교장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그와 내가 함께할 일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모두 끝났습니다. 마지막 일은 지난 11일의 졸업식입니다. 달력을 보며 생각해봐.. 2010. 2. 14.
<파란편지> 900일 오늘은 2010년 2월 12일, 어제는 이 블로그를 개설한 지 9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헤아려 본 건 아니고, DAUM 회사에서 그렇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내게는 이 블로그를 찾는 이들이 다 고맙지만 DAUM에서 보내준 '내 블로그 그 특별한 순간들'에 보이는 분들에게는 '한턱' 내고 싶습니다. "오십시오! 내겠습니다." 900일이니까 2년 반이지요. 재미도 없는 글을 싣고 있지만 이 블로그를 찾는 분이 이만큼은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를 치고 싶기도 합니다. 2010년 2월 13일! 이제 퇴임할 날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 41년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이제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외치듯 교육과 인연을 아주 끊고 사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될 것 같.. 2010. 2. 13.
국격(國格) 국격(國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3일 법무부․국민권익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장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모두 발언을 했답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국격보다 세계가 생각하는 우리의 국격이 매우 높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 국격은 경제력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 2010. 2. 2.
하이힐 폭행 신문기자들은 어떤 일에 대한 기사의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잘 붙이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신문사설 제목에 '공중부양(空中浮揚)'이라는 단어가 보여서 '무얼 공중으로 띄우나?' '우리 학교 입학식 때 아이에 대한 부모의 소원을 쓴 작은 종이를 수소풍선에 매달아 띄우게 했는데, 법원에서도 그런 식으로 무얼 띄우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읽어봤더니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글이었습니다.1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는 14일 작년 1월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 위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외신을 타 '공중 부양(浮揚)'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혐의 내용 3가지 모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강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미디어법 등의 처리 반대 농성을 벌이.. 2010. 1. 28.
병실 일기 Ⅱ-지난해 12월의 병원과 올 1월의 병원 병실 일기 Ⅱ - 지난해 12월의 병원과 올 1월의 병원 - 2009년 12월의 병원 이야기입니다. 참을 수 없이 아파서 응급실에 들어가겠다는 연락을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망? 병원으로부터 제 사망이 언급되는 것을 저는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렇.. 2010. 1. 27.
병실일기 Ⅰ-2010.1.17~1.22.서울아산병원- 옛날에 한 해마(海馬)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행운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겨 돈을 몽땅 챙겨가지고 길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뱀장어를 만났다. “야, 이 친구야! 어디를 가는 길이지?” “행운을 찾으러 가는 길이야.” 해마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꼭 좋은 때 만났군.” 뱀장어가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돈을 절반만 주면 속력을 낼 수 있는 이 지느러미를 네게 주어 훨씬 빨리 바라는 곳에 도착할 텐데…….” “하! 그것 참 그럴듯한데!” 해마는 돈을 치르고 지느러미를 얻어 두 배의 속력으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에는 우뭇가사리를 만났다. “야, 이 친구야! 어디를 가는 길이지?” “행운을 찾으러 가는 길이야.” “꼭 좋은 때 만났군. 만약 돈을 좀 낸다면 여행을 훨씬.. 2010.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