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늙어서 자연사(自然死)하지 못하고 병들어 죽게 되면, 분명히 다음 두 가지 경우 중 한 가지에 해당할 것입니다. 즉, 한 마리 파리가 그의 몸 속에 침입했거나 어떤 사건이 벌레가 되어 그의 마음을 침식해버리는 경우입니다.
아! 꼭 죽어버리는 경우만이 아니고, 아직 멀쩡해도 괜찮을 나이에 병이 들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런, 남을 병들게 하는, 남을 병들어 죽게 하는, 한 마리 벌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병들게 하거나 죽음으로 몰아넣는 파리나 벌레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1. 한 마리 파리 때문에 죽어간 톰슨가젤의 경우
톰슨가젤 한 마리가 이상하다. 자유롭게 풀을 뜯는 다른 동료와 달리 놈의 몸이 자꾸 왼쪽으로 기운다. 기울어지면 바로 서고 바로 서자마자 기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틀비틀 원을 그리면서 돈다. 동료들은 풀을 뜯다 자신에게 부딪치는 놈을 힐끗거리지만 그뿐이다. 새끼인지 작은 놈이 어미 뒤를 몇 번 따라 돌다 그만 멈추어 선다. 초점을 잃어가는 까만 눈동자는 어지럼증 때문이라기보다는 두려움과 절망 때문에 아득하다. 동료 무리가 다른 초지로 옮겨 가자 새끼와 둘만 남게 된 놈의 동선은 훨씬 도드라진다. 왼쪽 앞발의 마비에 갑작스레 몸이 기울어지면 쓰러지지 않기 위해 얼른 오른쪽 앞발을 내딛었다. 숨이 차는지 턱밑으로 침이 흐른다. 호흡이 거칠게 끊어진다. 서서히 원경으로 빠져나온 앵글 속에서 새끼가 광막한 초원을 바라본다. 고요하다. …(중략)…
톰슨가젤이 궁금해 되돌아간 내셔널지오그래픽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직도 놈이 돌고 있다. 기력이 달린 탓에 속도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놈은 2미터 안팎의 작은 괘도를 미친 듯 운행하고 있다. 새끼는 보이지 않는다. 냉랭한 어투의 내레이션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모든 게 한 마리 파리 때문이었다. 우연히 길을 잘못 든 파리는 톰슨가젤의 귓속에 갇히고 잔 솜털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고막 근처에 수백 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 부화한 유충은 썩은 어미의 사체를 먹으며 자라다 고막의 미세혈관을 통해 톰슨가젤의 뇌로 침투한다. 이 작고 조용한 게릴라들은 뇌에 염증을 일으키며 균형중추와 운동신경계를 교란한다. 일종의 세균성 뇌병변 증세를 보이는 톰슨가젤은 자신의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왜 돌아야 하는지 모른 채 기력이 다할 때까지 돌게 될 것이다. 노란 창문모양의 내셔널지오그래픽 마크를 깡총 뛰어넘어 지평선 뒤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톰슨가젤의 회전은 멈추지 않는다. 적외선카메라에 번득이는 눈엔 이제 처연한 체념의 빛이 깃든다.
…(중략)…
그사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엔 다시 세렝게티의 새벽이 밝아온다. 화면상단의 디지털시계는 72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꼬박 사흘이 지나도록 다행히 톰슨가젤은 맹수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것이다. 더 다행인 건 그 지긋지긋한 회전을 멈춘 것이다. 달콤한 휴식이 톰슨가젤의 가지런하고 고요한 호흡에 머문다. 콧구멍 속으로 한 무더기 모래가 천천히 들락거린다. 짓무른 포도알처럼 탁한 눈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반쯤 감겨 있고 수많은 파리들이 몸을 뒤덮고 있다. 동료의 실수가 빚어낸 죽음에 죄의식을 느낀 파리들은 부족 전체가 날아와 임종을 지켰고 숨이 멎자 하이에나와 마샬이글과 구더기들이 며칠 동안 눌러앉아 조문했다. 왁자한 의사당이 한산해지고, 헐떡이던 침실이 몽롱해지고, 야생의 장례식이 끝난 초원마저 다시 적막해지자 세상은 비로소 긴 침묵에 빠졌다.
출처 : 연규상, 「다리, 너머」(『현대문학』 2010년 4월호 98~125쪽의 단편소설)
2. 어떤 사건이 벌레가 되어 침식해버린 부동산 관리인의 경우
자살한 어느 부동산 관리인에 대해서 어느 날 누가 내게 말하기를, 그는 5년 전에 딸을 잃어버렸다는 것과 그 후로부터는 많이 변했으며 또 그 사건이 '그를 침식(侵蝕)해 들어갔다'는 것을 얘기해 준 일이 있었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바랄 수는 없다.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침식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회는 이러한 시작들을 대수롭게 보지 않는다. 벌레는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벌레를 찾아야 할 곳은 바로 거기다. 실존에 직면한 명철(明哲)로부터 광명 밖으로의 도피로 이끌어 내는 이 죽음의 장난, 이것을 추구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처 : A. 카뮈(이정림 옮김), 『시지프의 신화』(범우사, 2011, 4판1쇄), 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