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는 가끔 다니시나요?"
"네, 가끔."
"자주 가야겠는데요. 아니 자주보다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자신의 치아상태에 대해서는 그도 웬만큼 알고 있었다. 저스트 나우! 하고 의사는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발치를 실현해야 할 치아가 몇 개 되네요. 전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상태로 그동안 저작을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 미처 저작이 덜 된 음식물이 들어가면 위장에 치명적인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전에 저작은 뇌기능에 먼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이대로 치아를 방치하게 되면 자발적으로 치매를 앞당기는 원인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의사들은 환자에 대해 근본적으로 냉소적일뿐더러 심지어는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의사가 바로 그런 의사였다. 인간을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단순한 유기체로 파악하기 때문이리라.
윤대녕의 단편 「검역」 중 한 부분입니다(『현대문학』 2011년 9월호, 117쪽).
윤대녕 작가의 저 이야기에 등장하는 치과 의사는 좀 밉게 묘사되어 있지만 저렇게 밉상인 의사는 한둘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나만 해도 바로 저런 인간부터 만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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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좌우의 맨 안쪽 어금니를 하나씩 다 빼버렸습니다. 이렇게 빼버리기 전에는 막연히 어금니도 여러 개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자신을 치아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입안에 혀 같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입안의 사정에 밝아야 할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스럽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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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설설 아프기 시작한 건 2009년 여름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더러 아팠겠지만 대수롭지 않았고, 퇴임을 앞둔 시기가 되자 온갖 것에 다 신경이 쓰였을 것입니다. "치과에 가야지, 가야지……" 말만 늘어놓다가 어느 날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정도로 아파서 동네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신흥주택지이므로 건물도 밝고 상큼하고 치과 이름도 아름다웠습니다.
간호사, 치위생사와 면담하고, 엑스레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번잡하다 싶은 그 절차를 거치고 이발소 의자 같은 진료실 의자에서 죽은 지 한참 되어 해골에 치아만 오소소하게 남은 것 같은 그 사진을 보고 앉아 있으면 누구라도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치과 의사는 한참 후에 나타났습니다. 초면이고 내 치아를 고쳐 줄 '의사'니까 인사를 잘 해야 할 텐데 이미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기댄 상태여서 쳐다보기조차 그리 쉽지 않아 매우 신경이 쓰였다는 기억만 남아 있으므로 그때 저는 그 의사에게 제대로 인사를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의사는 내가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리는 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했으므로 그가 뭘 묻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그저 "응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몇 마디 대화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후에 아픈 어금니 중 한 개를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임플란트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치과에만 가면 그 과정이 번잡하거나 돈이 꽤 들어가거나 하는 일보다는 입을 크게 벌려야 한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이어서 얼른 끝나기만 하면 좋겠다 싶은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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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여 '한동안' 그 치과에 정기적으로 드나들게 된 것입니다. 인공 치아를 심으면 그것이 본래의 내 치아처럼 취급되는 것이 아니고,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그대로 붙어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러 드나들어야 하는데다가 '발치'(이 뽑기 : 그들이 이른바 '전문적'으로 익숙하게 표현하는데 쓰이는 용어인듯)를 해야 할 치아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어서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아득한 느낌에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 나는 이 치과에 잡혔구나!' 싶은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말하자면 일정이 아무리 복잡해도 정기적으로 그 치과에 가서 "아~" 하고 힘껏 입을 벌려야 할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는 다음 작업으로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님 치아는 제대로 쓸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둘씩 빼어버리고 차례로 임플란트를 해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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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큰일이구나.' 싶은 순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는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당연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를 기대할 순 없지만 최소한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 의자에 기대어 "아~" 하고 입을 벌려야 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일단 상대방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처지라는 게 더 속상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누가 판단하는 거죠?"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얼른 대답했습니다. 아니, 네 주제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게 가당한 일이냐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중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자신을 결코 "저"라고 낮추어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거야 전문가가 판단하는 거고, 의사가 내가 전문가지요."
나는 목에 걸쳐진 것을 풀어 간호사에게 건네주며 일어섰습니다.
"저는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의사가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가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 치과 간호사는 그 후에 두어 차례 전화를 해서 검진을 받으러 오라고 했지만 묵살해 버렸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문자 메시지는 왔습니다. 말하자면 임플란트 한 것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그 치과에서 해넣은 저의 그 가짜 이빨은 칫솔만 닿아도 흔들려 통증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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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라니!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도대체 누구 앞에서……
직업이 세분화되어 나감으로써 웬만한 사람은 거의 전문가 아닙니까? 구두 수선 전문가, 닭튀김 전문가, 교육 전문가, 엘리베이터 전문가, 화장품 판매 전문가………… 치아 전문가인 치과의사가 인격적으로는 그런 전문가들과 도저히 다를 수가 없게 됐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치과의사가 교육 전문가, 닭튀김 전문가, 구두 수선 전문가보다 인격적으로 더 높습니까?
나로서는 교육 전문가보다 밑에 앉아야 할 사람을 당당하게 꼽기도 어렵지만, 교육 전문가보다 위에 앉아야 할 사람을 굳이 꼽으라면 성직자(聖職者) 한 가지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성직자 또한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고, 고양하는 일 외에, 돈이나 권력이나 그런 것에 욕심을 부려 손가락질을 받았다면, 아예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리를 별도로 마련해서 다시는 그 입에 "사랑" "하느님" "자비" 같은 고급스런 단어를 담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려 꿇어앉혀야 하겠지만……(용서란 그런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는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
그렇게 어금니 한 개가 있던 자리에 임플란튼가 뭔가를 한 나는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심장을 고쳤고, 그 이후에도 정신이 없는 세월을 좀 보내다가 다시 치아가 아픈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장내과 의사도 이제 치과에 갈 정도는 되었다고 해주었습니다. 심장내과 의사의 판단이 필요한 것은, 아무리 중요한 심장약이지만 치아를 빼거나 어쩌거나 할 때 피를 흘릴 염려가 있으면 그 이전 며칠간 복용을 중단해야 할 약품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병원 치과의사는 나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 의견을 다 듣고, 내가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금니를 몇 개 더 뽑은 것은 순전히 내 의사결정이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그 병원 치과의사는 임플란트를 하라고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살지요?"
"왜요? 어금니가 몇 개 없으니까 아주 불편합니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사탕이나 무, 당근 같은 채소 조각이 들어가면 저 안쪽에서 치아에 닿지 않고 '왈가락 달가락'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단지 그럴 뿐이긴 합니다."
"그러면 그냥 지내셔도 되지 않을까요? 살다가 많이 불편하면 그때 가서 무슨 수를 써도록 하시지요."
"전에 어떤 의사선생님은 임플란트를 하지 않으면 다른 이까지 다 쓰러진다고 하던데요?"
"글쎄, 그러면 쓰러지는가 살펴보면서 지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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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병원 치과에서는 이 형편없는 치아와 잇몸 사이를 메우는 작업을 해주었습니다. 그 작업을 맡은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잇몸과 이 사이가 많이 벌어져 있는 것을 매우 미안하게 여기시는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한두 개를 떼우고 돌려보낼 때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음에 다시 한두 개 메워야 하는데 다시 올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매번 정말로 송구스런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고, 다음 약속 날짜와 시간을 꼭꼭 지켰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의사 선생님 지시에 따라 입을 벌리고 생전 처음인듯 낮잠을 자기도 했고, 더러는 코를 골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빨을 왕창 다 뽑아 버리든지 말든지………… 틈을 메우고 돈을 많이 받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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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덧붙이면 그 의사선생님은 입을 벌리는 일에 대해서도 늘 조금만 더 벌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동네 치과의사를 생각하면 의과대학에서는 도대체 어떤 또라이들이 뭘 가르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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