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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거짓말을 자꾸 하면

by 답설재 2012. 6. 28.

 

 

 

결국은 거짓말을 하는 자신도 정말인 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부분을 그렇게 하다가 그것이 자신의 진실이 되어버리면, 다음에는 그 작은 부분을 포함한 보다 큰 틀의 거짓이 그의 '진실'이 되고, 그렇게 각색되어 나가다가 나중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그의 진실'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기에 한 형제가 있습니다.

형은 부모와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면 그 부모에게 잘해 주는 일도 있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도 있게 됩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형은 주로 자신이 잘못한 일만 떠올리고 그걸 남에게 이야기하며 가슴아파합니다.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불효'가 되어 버립니다.

 

그 동생도 당연히 가슴이 아프겠지요.

동생은 자신이 한 일 중에서 몇 가지의 잘한 일을 주로 기억하고 싶어하고,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자꾸 합니다. 또 그 사실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그는 그렇게 하면서 그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이야기하려고 조금씩 구체화함으로써 '허구'까지 '진실'로 전환해버리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설명에서는 형과 동생을 바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에는 당연히 순서나 특성이 없는 설명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잊고 싶은 일은 그 기억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하게 되고, 그러면 차츰 잊을 수도 잊지만,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일만 기억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스스로 그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결국은 그 거짓말을 하는 자신도 정말인 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 증거가 되는 사례 몇 가지를 모아봤습니다.

 

 

 

<사례 1>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살인자의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1

 

게다가 패러독스의 극치는 바스커빌을 속이려던 살인자가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되어, 그 죽음들이 신의 어떤 계획에 의한 것으로 믿게 된다는 데 있다.

 

피에르 바야르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그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알리나르도가 자신의 그런 아이디어를 내게 전해주었는데, 그 후 나는 또 누군가로부터 당신 역시 그의 생각을 일리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얘기를 들었소. …… 그래서 나는 신의 어떤 계획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라고 확신했고 그것에 책임을 느끼지 않은 거요."(475쪽)

 

조금만 덧붙이면, 피에르 바야르는 이 사례를 보여주고나서, "호르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력을 잃은 상태로 오직 자신의 추억들──게다가 이 추억마저도 그의 망상에 의해 다시 손질된 추억이다──을 바탕으로 하여 그 책에 대한 하나의 관념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지만, 바스커빌도 마찬가지로 그 책에 대해 이미 품고 있는 이미지가 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비교 불가능한 어떤 내면의 길을 좇아 어떤 가공의 오브제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결국 "두 사람이 같은 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례 2>

 

다음은 W.G. 제발트의 소설 『이민자들』의 「헨리 쎌윈」편에 나오는 부분입니다.2

 

이제 와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뒤늦게 깨닫는 사실이지만, 전쟁이 터지고 내가 징집되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요한네스 네겔리와 작별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지요. 헤디와는 크리스마스 즈음 베른에서 만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녀와의 이별이 차라리 네겔리와 떨어지는 것보다 쉬웠으니까요. 지금도 네겔리가 마이링엔 역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억은 그저 내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인지도 몰라요. 그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헤디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낯설게만 느껴졌지만, 네겔리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지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마이링엔에서 그렇게 헤어진 뒤로는 두번 다시 만난 적이 없었는데도 그랬지요. 네겔리는 전쟁소집령이 내려온 직후에 오버아르휘테에서 오베라르로 가다가 사고를 당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보십시오. 마이링엔 역에서 화자에게 손을 흔들던 네겔리의 모습은 화자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진실인 것은, 화자는 네겔리와 그렇게 헤어졌다고 여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점뿐입니다.

 

 

 

덧붙이면, 그러므로 거짓말은, 선의일 경우도 있고 악의일 경우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자서전을 쓰는 경우 자신이 한 일, 자신과 관련된 일들에 대한 회상은 고의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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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에르 바야르, 김병옥 옮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11), 71~74.
2. W.G. 제발트, 이재영 옮김,『이민자들』(창비, 20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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