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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60

다시 온 봄 겨우내 눈밭에 뒹굴어도 괜찮을 만큼 '튼튼한' 점퍼 한 가지만 입고 지냈다. 문밖에만 나서면 '무조건' 그 옷을 입었고, 더구나 털모자까지 뒤집어썼다. 한심한 일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969년 봄부터 딱 41년, 출근을 하는 날이면 '무조건' 정장을 하다가 그렇게 하자니 어색했지만, 그것도 며칠이지 곧 익숙해졌다. 이월에는 복장을 좀 바꿔 볼까 했다가 그만둔 건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봄이 왔다는 말을 믿었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까짓 거'? 그렇게 가소롭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핏줄에 스탠트라는 걸 집어넣었으니 이젠 괜찮겠지' 했는데 몇 달만에 다시 실려가 그걸 또 한 번 집어넣고 나니까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고, '내 핏줄은 걸핏하면 좁아질 수 있구나' 싶어 지레 .. 2011. 4. 2.
후줄근하고 추레한 동기생들 대학 동기생 모임을 하면 매번 대여섯 명 정도가 모여 식사를 한다. 한때 교육자였고 피끓는 열정을 토로할 줄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럴 일도 없고 아니 아무런 일도 없고 있을 것도 없고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이야기를 나 혼자라도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대부분 건강해서 나보다 십여 년씩은 더 살겠지만 저들도 후줄근하고 추레하긴 마찬가지다. 정장을 할 필요가 거의 없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정성들여 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280명인가가 함께 졸업했다. 우울했으나 지금보다는 찬란했던 시절의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 다닐 땐 저 자리에 모인 저들과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다. 그건 저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2011. 3. 13.
무서운 '중딩' 오죽하겠습니까. 고등학생보다 더 무섭다고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천지를 모를 때니까요. 고등학생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가 없는 애들이지요. 어떻게 할 방도가 없겠지요.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누구네 아이들입니까? 누가 낳았습니까? 누가 가르쳤습니까?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 아이들입니까? 나는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그래서 뜨거운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럴까요?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그 아이들, 벌써부터 담배를 피우고 요즘은 동네 공원에서 어른들도 그러지 않는데 버젓이 부둥켜 안고 '사랑'(?)을 나누는 아이들, 싸늘한 날씨에도 애써서 뽀얀 넙적다리를 내놓고 돌아다니는 그 아이들이 멋지고 예쁘게 보입니다. 대견해 보이기도 합니다. 혹 학교에서 아무렇게나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속이 .. 2011. 3. 10.
사랑하는 선중에게 사랑하는 선중에게 선중아. 이번 봄방학에 우리는 눈물로 만나고 헤어졌구나. 만나는 날, 한 번 더 살펴보고 한 번 더 생각해서 행동하는 의젓한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자고 했을 때 네가 흘린 눈물은, 네 결심을 보여준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질 때는 가슴이 아팠.. 2011. 2. 24.
봄! 큰일이다 봄! 큰일이다 ◈ 내 그럴 줄 알았다. 대책 없이 앉아 있다가 …… 봄이 올 줄 알았다. 겨울 다음엔 봄이라는 건 '법칙(法則)' 이상의 것이지만, 경험만으로도 계산상 이미 예순여섯 번째가 아닌가. ◈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린애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초인간적인 행복.. 2011. 2. 20.
페이퍼 워크 Ⅴ-학교경영관- 다시 페이퍼 워크 혹은 1 Page Proposal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두 학교에서 교장을 했습니다. 그래봤자 딱 5년 반이어서 한 학교에서 1, 20년 혹은 2, 30년씩 교장을 하는 서양에 비하면 시작하다 만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면 "교장은 혼자 다 하느냐!"고 대어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조차 없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들 나라 교장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쫓겨납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우리는 다행일 것 같습니다. 거의 아무나 교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두 학교에서 저 아래의 파란색 글씨로 된 부분을 경영관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그 1 Page Proposal이 아닐까 .. 2011. 2. 10.
'연습' 그 이전 혹은 그 과정 '연습' 그 이전 혹은 그 과정 ◆ 며칠 전 역사상 가장 탁월한 저격수 시모 해이해가 어떻게 그와 같은 사격이 가능한가 묻자 다 연습을 한 덕분이라고 대답하더라는 얘기를 전하며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턱대고 연습만 하면 되나? 아무나 그런 연습이 가능하냐? 그런 의문이 생.. 2011. 2. 7.
영화 "울지마 톤즈" '수단의 슈바이처', 고(故)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그린 KBS TV의 다큐멘터리 영화. 그는 2001년부터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이태석 신부의 사진을 받아든 한센병 환자 아순다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사진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발가락이 뭉그러져 버리고 게다가 맹인이었다. 맹인 아순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톤즈에서 그가 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란 중인 그 폐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환자가 몰려들어 병원을 지었다. 도면은 아무나 그릴 수 있는, 초등학교 학생이 정성들여 그린 전개도 같았다. 그는 그 도면을 보여 주면서 소년처럼 미소지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이 .. 2011. 2. 5.
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앙드레 김과 함께 유니세프를 많이 도와준 분으로도 유명합니다. 영화배우 안성기 씨도 그렇습니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요. 스스로 이야기하기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지만 저도 1989년말부터 '세계교육자문위원'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봉사.. 2011. 2. 1.
현강재 천장에 비친 달 Ⅰ 현강재는 강원도 고성에 있는 안병영(安秉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님 댁 건물 이름이기도 하고, 블로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교육부장관을 두 번 지냈습니다(1995.12.21~1997.8.5, 2003.12.24~2005.1.4). 두 번째 때는 직명이 그냥 장관이 아니라 부총리겸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처음에 장관이었을 때도 교육부에 있었고, 두 번째 때는 제가 2004년 8월 31일까지 근무하고 학교로 나갔으니까 그분은 제가 교육부를 떠난 4개월 후에 대학으로 돌아갔습니다. 첫 번째 때는 제가 직급이 낮아서 직접적으로 대할 일이 전혀 없었지만, 두 번째 때는 사나흘이 멀다 하고 결재를 받으러 장관실을 드나들었으므로 어쩌다가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면 궁금하고 허전할 지경이었습니다. .. 2011. 1. 28.
따듯한 소설가 박완서 박완서 선생님 영결식 날입니다. 어디쯤 가고 계실까요? 점심 시간만 되면 운동삼아 교보문고에 드나들던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분의 책을 선 채로 읽었던 일이 송구스러워집니다. 그분이 별세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그런 마음이 들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못난 사람입니다. 『현대문학』 2010년 9월호에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출간 기념 박완서 특집'이 실렸습니다.1 열두 명의 쟁쟁한 작가들이 박완서 선생님과의 인연, 미담, 추억, 일화들을 소개했는데, 소설가 김연수의 「왼쪽부터 김연수 씨, 김연수 씨의 부인……」이라는 글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2 그가 소설가로 등단하자 그의 부친이 자랑을 늘어놓아 지방신문에 더러 그의 기사가 실렸고, 그런 연유로 조선일보에 실린 수상.. 2011. 1. 25.
에디슨박물관, 가보셨습니까? -교육도 심장 상하는 일입니다- 지난해 12월 어느 날 신문에서 강릉 '참소리 축음기·에디슨 박물관' 손성목 관장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내겐 평생 친구도 애인도 없어… 오직 축음기밖에 없지요" 그게 제목이고 부제 두 가지는 '미친 놈 소리 들어가며 암·파산 위기 속에서도 에디슨 발명품 2000점 모아' '1000억원어치쯤 되겠지만 수집품은 내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의 재산' 두 가지였습니다.(조선일보, 2010.12.20. '최보식이 만난 사람') 그 제목을 보는 순간, 11년 전인 1999년 12월 21일에 강릉의 그 박물관을 찾아가(그해 가을에 나는 교육부에서 학교로 나왔고 그런 곳도 가볼 만큼 모처럼 참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단 6개월 만에 다시 교육부로 돌아가게 되어 그 한가함이 길진 못했지만) 그 어마어마한 수.. 2011.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