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느 대학생의 인터뷰

by 답설재 2013. 4. 4.

 

 

 

 

 

어느 대학생의 인터뷰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뭘 외쳐 봐도 쳐다봐주는 이 없는, '그래, 또 벌면 되지' '다시 하면 되지'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살면 되지' 할 수도 없는, 마음도 몸도 시들어버린 이 블로그의 주인에 비해 이 봄에 새로 대학생이 된 이들은 "싱그럽다"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아! 인생이란, 삶이란, 어렵고, 힘들고, 고달픈 것이지만, 더구나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보니까 그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그들이 잘 알아차리도록 누군가 좀 제대로 알려주면 좋으련만…….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경기버스 방송'을 볼 수 있습니다. 음향은 없지만 자막이 있으니까 아래쪽에 깔리는 뉴스도 보고, 그 싱그러운 젊은이들, 연예인들이 뭐라고 하는 예쁜 모습도 구경합니다.

 

  몇 명의 새내기 대학생이 등장했습니다. 새봄의 각오를 말하는 인터뷰입니다. '덧없이' 살아온 '싱그럽지 않는' 나하고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므로 무심코 쳐다보다가 한 남학생의 말을 듣고 '어?'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공부만 하느라고 (……) 이제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래, 그렇지요. 이 나라 교육제도 아래에서 대학생이 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무엇보다 하고 싶은 운동도 못한 세월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운동을 해야지요. 당연히 해야 하겠지요. 나는 누구보다도 그걸 실감하는 사람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 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새삼스럽게 매일 저녁 헬스장에 나가고 있는, 그 헬스장의 젊은이들 눈치를 봐가며 지내야 하는 처지에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렇지만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래, 할 말이 그것밖에 없는지.

  고등학교 때 도대체 무슨 공부를 그렇게나 했는지,

  그게 공부라고 생각하는지,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정말로 배워보고 싶은 것이 없는지,

  이제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면 구태여 왜 그 어려운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했는지, ……

 

 

 

 

  운동만 하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고 하겠지요, 압니다.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다 알지요. 그걸 모른다면 정말 바보지요.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 대학생이 이런 대답을 했다면 전혀 섭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이나 실컷 자야겠습니다."(그렇다고 4년간 잠이나 자는 건 아닐 테니까.)

  "책도 좀 봐야겠지요."

  "친구들과 실컷 놀아보려고 합니다."(4년간 놀아나겠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

  …………

  "이제 운동도 좀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이제 운동도 좀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라는 대답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실컷 했으니까" 혹은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했으니까" "이제 운동에 힘쓰겠다"는 대답과 다릅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럴 시기입니다.

  한 가지만 부탁한다면, "대학입시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논리는 제발 좀 집어치우기 바랍니다. 가령 '자율학기제'가 좋은 것이면 당장 실천하면 됩니다. 어물어물하다가는 아주 질기고 노련한 세력에 밀려서 유야무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자율학기제가 왜 좋은 것입니까? 아이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진정코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기간으로 삼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기간에 아이들이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학력(學力)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을 망치자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진정한 공부라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중학교 3년 전체를 자율학기제로 바꾸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초·중·고등학교 12년의 교육을 '그런' 체제로 재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집니다.

 

  신문을 보니까 자율학기제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눈에 띕니다. 학력이 낮아진다는 논리입니다. 도대체 학력이 뭔지 묻고 싶습니다. 학력이 외우는 것인가, 그렇다고 인간의 여려 가지 능력 중 극히 일부인 암기력을 향상시키는 것조차도 아니고, 그저 많이 암기시키는 것이 학력인가, 그게 지식정보화 사회의 학력인가, 우리의 이 아이들이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할 인재로 성장하려면 그런 것을 학력으로 정의해서 들들 볶아야 하는가, …………

 

 

 

 

  사실은, 그 대학생에게 묻고 싶은 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몇 년 간 그대를 잡아놓았으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겨루며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운동부터 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선중에게  (0) 2013.04.16
‘鐵(철)의 여인’ 떠나다  (0) 2013.04.11
「The End of the World」이 그리움...  (0) 2013.03.31
잘 웃지 않는 이유  (0) 2013.03.28
나는 어디에 있나?  (0) 201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