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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65

인연-영혼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올 가을, 끊임없이 반복될 가을입니다. 2012년 가을, 혹은 마지막 가을일 수도 있습니다. 나로 말하면 그 어떤 가을도 다 괜찮고 고맙고 좋은 가을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가을도, 바람에 휩쓸려가는 낙엽 소리가 들리면 쓸쓸해지고, 골목길 조용한 곳에 모여 있는 낙엽을 보면 더 쓸쓸해집니다. 이듬해 가을이 올 때까지는 설명이 필요없게 됩니다. 이 가을에 37년 전 어느 교실에서, 내가 그 학교를 예상보다 일찍 떠나는 섭섭한 일로 겨우 5, 6개월? 날마다 나를 바라보던 한 여학생, 그 여학생이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는 순간에 할 인사를 애써서 연습했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랬는지, 인사는 나누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습.. 2012. 11. 10.
친구맺기 나에게도 '블로그 친구'가 많습니다. "많다"고 한 건 비교적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 관점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친구 신청은 사절한다"고 대놓고 선언해 놓았던데,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나는 누구라도 친구 신청을 해오면 무조건 다 승낙해 주고 있습니다(단 글이 없거나 한두 편 뿐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블로거와 상업적인 블로그는 사절). 아마 그렇게 하다 보니까 '친구(?)'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 고백할 게 있습니다.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여남은 명의 친구가 생겨서 얼마 동안 '행복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그 친구들 블로그를 방문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대부분 새로운 글을 싣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두.. 2012. 11. 5.
오며가며 Ⅰ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수락산이 보일 때쯤에는 얼른 눈을 들어 창 너머를 살핍니다. 그 철로변에는 볼 만한 경치가 수두룩합니다. 언젠가(someday) 책을 들지 말고 좀 한가한 마음으로 이쪽 창가와 저쪽 창가에 앉아 오고가며 그 경치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작정입니다. 이 생각은 오래되었는데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 중의 한 가지입니다. 한강도 언제나 참 좋은 구경거리입니다. 아침나절에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상류 쪽이나 하류 쪽이나 다 좋고, 저 멀리 강변 풍경들도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저녁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을수록 그만큼 더 좋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우울해 보입니다. 전철을 타고가다 보면 이 경치를 일삼아 구경하는 승객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내 마음도 밝아집니다... 2012. 10. 23.
웃음치료 M은 회사 기물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 M은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광고판을 유성펜으로 검게 색칠을 하다 걸렸다. 사장 전용 화장실을 빼고 회사 내에 있는 모든 화장실을 그렇게 했다. 남자화장실까지. M이 광고판을 망가뜨린 이유는 거기 적힌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입니다.' 그 글을 볼 때마다 M은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변비까지 걸리게 되었다. M은 밀폐용기 생산라인에서 일을 했다. 뚜껑이 제대로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검사하는 일을 십오 년이나 했는데, 남들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불량품을 찾아냈다.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는 M을 자르지 못했다. 그 사건 후, 나는 M에게 쪽지를 보냈다. 실은 나도.. 2012. 10. 11.
이명(耳鳴)은 내 친구 '이명'을 아십니까? 귀에서 여름 한낮 매미 우는 소리 혹은 기계음, 혹은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영원히(!)" 들리는 현상. "쐐~쐐~쐐~쐐~쐐~쐐~쐐~쐐~쐐~" 혹은 "찌이잉───────────" 혹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들립니다. 나는 이명을 앓고 있습니다.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질병의 한 종류라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오래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대충이라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병원에 가면, 가령 독감이 걸렸다든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든가 하여간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갔다 하더라도 일단 "저는 이명이 들리는데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마치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처럼. 그게 무슨 자랑거리는 아닌 게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는 판단 .. 2012. 10. 3.
다시 병원에 가기 싫은 이유 "네. 그러나 요도호스는 곧 끼워야 한대요. 괜히 고집을 부리다 오줌이 방광에서 넘쳐 신장으로 역류하면 병이 신장에까지 확대되니 시급하답니다." 간호사는 몸집이 조그마하고 눈빛이 반짝여 야무져 보였다. 그녀는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강택수의 성기를 주물럭거리고 요도호스를 끼웠다. 강택수가 아파 낮은 비명을 질렀다. 간호사는 기구를 챙겨들고 사무적인 잔웃음을 띠고 사라졌다. '깜찍한 아가씨로군……' 강택수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요도호스를 통해서 오줌이 콸콸 쏟아져 곧 오줌주머니에 오줌이 가득 차 불룩해졌다. 강택수는 곧 화장실로 가서 오줌을 비우고 납작해진 오줌주머니를 들고 돌아왔다. 어느 소설의 한 부분입니다.1 이 부분을 읽다가 생각났습니다. '다시 병원에 가면 안 되는데……' ♬ 우선 간호사들이.. 2012. 9. 24.
스쿨존의 정의 당연한듯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 그 뉴스를 보며 생각한다. '이젠 별게 다 최고구나!' 10년 전쯤 이야기다.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국을 떠나며 후임대사에게 그랬다고 한다. “한국은 화장품 소비량 세계 1위, 성형 수술률 1위, 보톡스 주사 소비율 1위인 나라다.” 요즘은 그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도 그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소개는 한국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나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호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한다면 “참 한심한 1위”라고 할 수도 있고,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도 칭찬을 좀 받고 싶다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적인 여성들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임에 분명한 근거가 되는 1위"라고 추켜세울 수도 .. 2012. 9. 17.
시원이 이 아이는 시원이입니다. 며칠간 고심해서 고른 글자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있는 그곳, 그곳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쳐주거나 치료해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서, 내가 죽고난 다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사람이 살겠나 싶고, 요즘의 생명공학, 생명과학처럼 확실한 방법으로써 사람을 가르치는(그러니까 좀 아는 것 설명해주는 그런 짓 말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따위 일이 아니고), 혹은 마음에 병이 든 현대인들을 치료해주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 아이를 두고 그런 기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교육이나 의학이면 몰라도,.. 2012. 9. 13.
“지금 난 아주 행복해.” "지금 난 아주 행복해." "왜?" "진짜야." "왜? 왜 행복한데?" 심상대의 중편소설 『단추』에 나오는 대화 장면이다.* 이 블로그에, 좀 거창하게, 쑥스럽긴 하지만 결론처럼, '나는 이제 일부러라도 외로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빈 배처럼 스스로 포기하고, 비우고, 맑게 해야 한다' '그렇게 가는 실험대에 나 자신을 올려보면서 그게 좋다는 걸 느낀다'고 썼다가 "그건 좋은 게 아니다." "왜 그렇게 하나" "기쁨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충고를 받은 적이 있다. 기쁨과 행복? 객관적으로 보기에 나는 지금 불행하다는 건가? 만약 나 스스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썼더라면, "당신이 그 상태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결론은.. 2012. 9. 6.
외면 외면(外面) 전철 안에서 만난 강아지 어제 녹번동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보았습니다. 감아 놓은 태엽이 풀리면서 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몇 발자욱 걸어와 짖어대고, 또 걸어오다가 짖어댔습니다. 행상(行商)은 "밥도 안 줘도 되고, 잠도 안 자고, 집을 잘 지킨다!".. 2012. 8. 31.
담배가 좋았던 이유 ♣ '이쁜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의 블로그에서 저 사진을 보게 되자, 담배에 대한 그리움이 일었습니다. 일전에 외손자 녀석의 흡연에 관한 인터뷰에 답해준 것도 생각났습니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 가장 싫어하고 잔소리를 많이 한 사람은 당연히 아내였습니다. 뭐 거짓말 하지 않고 40년간, 1년 365일, 하루에 한 번 이상 잔소리를 들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담배를 피워서 무한 피해를 끼쳐 지금까지도 가슴이 쓰리게 하는 사람도 아내입니다. 1970년대에는 그가 앉아 있는 방안에서 담배를 피워댔고, 심지어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 짓을 했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한 보루씩 외상 담배를 가져다 주었고, 봉급날 그 담배값을 갚아주었습니다. 무려 47년을 피워 댔.. 2012. 8. 28.
초등학생 김선중의 근황 초등학생 김선중의 근황 2012.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