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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을이 온 날

by 답설재 2014. 10. 1.

 

 

 

 

사진 제목은 '올가을을 처음 만난 아침'입니다. '노루'님의 블로그《삶의 재미》(2014.9.24)에 실렸습니다. 이런 설명이 붙었습니다.

 

이른 아침. 집에서 나가면서 만나는 동네 큰길 건너편의 물푸레나무.

 

저 나무가 단풍 든 걸 처음 보는 게 그 해 가을을 처음 대면하는 걸로,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엔, 가을이 벌써 근처에 와 있는 걸 느끼고는 있었다. 어쨌거나, 작년 사진을 보니, 가을을 작년보다 열흘쯤 이르게 보는 거다.

 

 

 

 

가을은, 지역별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면서, 그러니까 어느 특정 지역이라면 '일시에' 이 세상에 오는 것인데 그 가을이 오는 걸 "저 나무가 단풍 든 걸 처음 보는 게 그 해 가을을 처음 대면하는 걸로,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는 건 가을이 오는 날이 사람에 따라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블로그 이름부터 《삶의 재미》이긴 하지만 이러한 정서는 얼마나 간결한 느낌을 주는지, 세상을 얼마나 재미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올해의 가을이 온 이래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글에 대략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물푸레나무의 단풍으로, 그해 가을을 처음 대면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하셨다는 건, 멋집니다. 저의 경우에는 공기 때문에 가짜 단풍이 많아서 하늘빛을 보고 그렇게 해왔는데 제가 하늘빛을 보고 "가을이 왔다" 하면,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들 합니다. 그들은 "아직 더위가 계속된다" 어쩌구 하는데 가을엔 더우면 안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걸 보면 참……

 

 

 

 

어느 아침녘, 하늘빛을 보고 가을이 온 걸 느끼는 건 매우 구체적인 일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몇십 년 전 그날들에 어른들이 하던 말에서 충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잊히지 않은 건 "하리하다"는 단어입니다.

 

 

 

 

 

 

 

'하리하다'는, 사전에서 찾지 못하는 단어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어거지로 그 의미를 만들어 보면 아마 '선연하지 않다' '힘이 없다' '풀이 죽었다' '움츠러 들었다' 같은 낱말의 언저리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어처구니 없다"고 하겠지요.

 

어느 날 그 아침결에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한두 해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늘빛이 하리한 걸 보니까 가을이네."

"더위도 다 갔겠지? 저렇게 하리하니까 더워 봤자 얼마 못 가지."

 

위의 사진에서 한번 하늘빛을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리한 저 하늘빛.

올해도 어김없이 그걸 느꼈습니다. 하늘빛이 하리해진 날 저녁, 어젯밤에만 해도 '부산스럽던' 나뭇잎들은 생기를 잃어 조용해지고 마치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나 하는 것 같고 더 이상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모두 단념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