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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TV는 늘 큰일났다고 떠들어댄다

by 답설재 2014. 9. 23.

 

 

 

『현대문학』에서 연재물 「소설, 때때로 맑음」(이재룡)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조르주 페렉은 1989년 발표한 『지극한 평범L'Infra-ordinaire』에서 매일 발간되는 일간지에는 매일 벌어지는 일상적 사건이 결코 실리지 않는다고 했다.1

 

제17회 연재 「지하철과 시장」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쩌면 신문과 방송으로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것들이 나의 하루의 중요한 부분들을 채워줌으로써 공허하지 않은 양 살아갈 수 있고, 남들처럼 아주 정상적인 삶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 글은 조르주 페렉의 그 작품에서 다음 부분을 인용했습니다.2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한 글씨로 쓰인 헤드라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항상 사건, 황당한 일, 기상천외한 것들이다. 열차는 탈선했을 때에만 존재하기 시작하고, 사망자가 많을수록 더욱 존재한다. 비행기는 납치되었을 때부터 존재에 도달하고, 자동차는 가로수를 들이받아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다. (……) 일간지는 일상적인 것을 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신문은 나를 지겹게 하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신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 관련 없고 나에게 질문하지 않으며 내가 제기하거나 제기하고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벌어지는 것, 우리가 겪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은 어디에 있을까? 매일 벌어지고, 매일 되풀이되는 것, 진부한 것, 일상적인 것, 명백한 것, 공통적인 것, 평범한 것, 지극히 평범한 것, 배경음, 익숙한 것, 그것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익숙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그러나 바로 우리가 그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에 질문하지 않고 그것은 우리에게 질문을 제기하지도 않으며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므로 우리는 마치 질문도 답변도 담겨 있지 않고 아무런 정보도 품지 않은 양 그런 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그런 것은 더 이상 심지어 무조건적인 조건반사가 아니라 마취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꿈도 없는 잠으로 채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TV는 하루에 몇 번씩 소식을 전합니다. 아침저녁 '황금시간대'에는 아예 한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보도합니다. 그 시간에는 더러 하던 일을 멈추고, 게다가 머리까지 비우고, TV가 바라는 자세로 그 방송을 보고듣습니다.

TV는 매일 온통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흥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한 시간으로 정리됩니다.

 

그렇게 편집된 하루를 보면서 나는 거의 언제나불편하고 언짢아집니다. 자주 흥분하게 되는 자신을 억제합니다. 날카로워지고 무뎌지기도 합니다. 나를 그렇게 만드는 소식들이 아주 많습니다.

드디어 TV 앞을 떠나며 세상의 그 못마땅한 일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그러므로 참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서글프지만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TV는 거의 언제나 그렇게 훼방을 놓지만 나는 나대로 자꾸 자신을 다독거려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보는 횟수만큼, 내 심장은 다시 점점 더 상하게 되고, 내 정서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날카로워지고, 거칠어지고, 무뎌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시골의 부모님을 찾아갈 수 있었을 때는 2,3일씩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럴 때는 세상이 잠시라도 멈춘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조용해도 괜찮은 것일까?' '아니, 이렇게 조용한데도 그곳은 여전히 그렇게 바쁘고 복잡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도시로 돌아와 다시 '정상적인' 일상에 편입되고, 세상은 그대로이고, 그동안에도 여전히 그렇게 돌아간 사실을 확인하면 이번에는 그것이 기이한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에도 TV는 그렇게 열을 올리며 소식을 전했을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기이했습니다. 그 2,3일 뉴스를 시청하지 않아도 좋았던 것도 신기했고, 그렇게 했어도 나의 생활에 큰 착오가 없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나는 세 가지의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외면해버리면 그만인데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 신문들을 구독하고 신문을 보는 시간을 줄여보려고 애를 씁니다. 신문을 보는 시간이 30분이 넘게 되면 속이 타고 자신을 한심해 하기도 합니다. 기사들의 제목만 보거나, 시간을 더 내어 작은 제목들까지 보거나, 더러 기사의 내용까지 읽으며, 어떻게 하면 더욱 짧은 시간에 더욱 효과적으로 볼 수 있을지, 더욱 짜임새있게 볼 수 있을지 궁리를 합니다.

 

그렇게라도 그 40면을 다 넘기지 않으면 뭔가 오류를 저지르거나 챙겨야 할 것을 빠뜨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 나 자신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위기의식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나 이틀, 그 신문들을 대충이라도 넘기지 못할 형편이면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할 일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TV나 신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하면, 끝내는 내가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 같다고 하겠지만, 그건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극적인 대처가 가능할 뿐입니다. 엄청난 것들과의 전면전이라니, 생각만 해도 엄청난 일이고 당치도 않습니다.

 

  • 스스로 TV를 보러 가지 않는다.
  • 신문을 그 정도로 대충 살펴보는 것에 만족하고, 그 시간을 더욱 짜임새 있게 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나간다.
  • 본 것에 대하여 가능한 한 일찍, 많이 잊어버리도록 한다.
  • 대충 이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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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재룡, 「지하철과 시장」(『현대문학』 2014년 7월호, 218~237), 220.

2. 위의 글 220.~221쪽애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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