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출근(擬似出勤)
아침나절에 흔히 전철역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다보는 풍경
Ⅰ
아침마다 집을 나섭니다. 퇴임 후 5년째입니다.
사무실까지 한 시간 반쯤, 남들처럼, 예전처럼, 서둘러 나서고 걷고 합니다. '소풍가듯 하자'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제때에 나오지 않았다고 원망할 사람이 없는데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서 '그게 정말일까?' '정말 그럴까?' 『시지프의 신화』에서 본 그 구절을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권태……
Ⅱ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수가 있다. 기상, 전차,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일, 식사, 잠,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러한 길은 대개의 경우 쉽사리 이어져간다. 다만 어느 날 「왜」 하는 물음이 고개를 들어 놀라움에 물든 이 권태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는 말은 중요하다.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행위 끝에 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의 운동을 시작하게 한다.1
까뮈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부조리한 논증을 시작하는 부분에 있는 문장입니다. 예전에는 이 부분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지겹기도 하지. 이런 하루하루, 끝없이 진행되는 이 생활……'
그렇게 하여 삶의 무의미함을, 진정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그 회의가 발전(?)하면 드디어 '자살'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Ⅲ
까뮈는 "권태는 그 자체 속에 무엇인가 진저리나게 하는 것을 지니고 있다"고도 했지만 "자각 끝에는 시간과 더불어 자살 또는 재기(再起)라는 결과가 온다"고 했고, 더구나 "여기서 나는 그 권태가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야만 되겠다"고까지 했는데도 저 "월 화 수 목 금 토" "권태" "기계적인 생활" "의식의 운동" "자살" "진저리" 같은 단어에만 눈길이 갔고, 그 문장 속에 저렇게 "재기(再起)" "권태는 좋은 것"이라는 말을 넣어 둔 것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까뮈가 그 에세이를 왜 썼는가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이렇게 끝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2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내버려 둔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짐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인하고 바위를 들어올리는 뛰어난 성실성을 가르쳐 준다. 그도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3 그 후부터 주인 없는 이 우주는 그에게 불모의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산의 금속적인 빛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Ⅳ
여기 이 사무실에 나오는 것을, '출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했고, 한 시가 급한 일이 많았고, 나 때문에 나라가 휘청거릴 리는 없지만 내가 보이지 않으면 찾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그때의 습성대로 움직입니다. 심지어 밥도 부지런히 먹습니다. 고쳐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며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아야지'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지내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까뮈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 속에는 이 세상에서의 그 어떤 불행보다도 강한 무엇이 있다. 육체의 판단은 정신의 그것과 다름 없는데, 육체는 소멸을 꺼리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습관을 얻기 전에 먼저 살아가는 습관에 빠지게 된다. 나날이 죽음을 향해 우리를 재촉하는 이 경주 속에서 육체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우선권을 지니고 있다.4
Ⅴ
더러 아내가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서기도 합니다. 때로 나는 베란다에 나가 서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가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는 나를 귀찮게 여겨, 내가 없어지면 홀가분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가 잘 다녀오기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렇게 내다볼 수 있는 날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까뮈에게, 이런 내 모습도, 지금도 바위와 함께하고 있을 저 신화 속의 그 인물에 비유할 수 있는지 묻고 싶지만, 그러나 언젠가 나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나의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추가적으로'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맙긴 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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