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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지난 일요일의 축제

by 답설재 2014. 10. 29.

 

 

 

 

 

지난 일요일의 축제

 

 

 

 

  일요일 아침, 아내가 좀 먼 곳에서 공연이 있다며 한복이랑 좀 실어다 달라고 했습니다.

  축제 현장은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늑한 곳인데 나만 그렇지 않은 곳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니다.

  세상이 늘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도 덜 미안할 것 같았고, 이러지 말고 매일 축제를 열면 어떻까 싶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아무래도 아늑하면 더 좋을 곳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저렇게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은 아내를 보니까 얼굴 윤곽을 아주 과장되게 표현한 가부끼의 배우가 생각나서 좀 우스웠고 약간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그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 때문이었는지,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걱정스러움(곱게 화장을 하고 공개적으로 나타난 나의 여인!)과 자랑스러움도 느꼈습니다. 자랑스러움이란 아무래도 저 중에서는 내 아내가 제일 이쁘구나 싶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내가 그렇지 않다, 내 아내는 좀 못났다고 해봐야 곧이들을 사람도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얘기를 공공연하게 써서 미안하고 쑥스럽습니다. 오죽하면 "팔불출"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건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그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서 평소보다 더 구체적으로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내에게 남다르게 대해준 것이 있습니까?"

  "…………………………"

 

  그렇지만 "아내여! 미안하다"고 하면 "난데없이 왜 그러느냐"고 할 것 같아서 공연을 마치고나서 만났을 때 그런 마음은 감추고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했더니, 집에 가자고, 그냥 집에 가서 집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미안해서 그런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이게 축제인지도 모르는데…………

 

 

  (추신 : 린에게. 너 이거 보더라도 너네 엄마에게 무슨 소리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나 미친 줄 알 거다. 명심해라. 말할 사람은 너뿐이니까 너만 읽어보고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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